수덕사 대웅전은 1937년 해체·수리공사 중 묵서가 발견되어 1308년에 건립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정확한 기년을 가진 목조건축물 중 그 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건축임이 확인되었다. 대웅전 묵서는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 일지 기록을 통해 내용을 알 수 있다. 1937년에 작성된 『1937年 保存修理 工事』 보고서에는 21건의 묵서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6건이 고려시대 기록으로 추정된다. 이 기록은 대체로 1308~1309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목재 건축 부재에 묵서한 것이다. 특히 1308년의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 묵서는 수덕사 비로전(대웅전)의 지정(地定), 입주(立柱), 상량(上梁)의 과정이 주 내용으로, 이를 통해 1308년 3월부터 4월 사이에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는 명문뿐만 아니라 불사를 주도한 인물인 동량(東梁), 지유(指諭)를 비롯해 발원에 참여한 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어 당시 불사(佛事)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수덕사 대웅전이 1308년에 건립되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원래의 전각 명칭이 비로전(毘盧殿)이었으며 ‘중수(重修)’를 목적으로 하는 불사였다는 사실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덕사 대웅전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묵서는 한국 건축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묵서는 수덕사의 고려시대 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자료로서도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 기록은 현재 1937년 자료를 통해서만 사진과 원문을 파악할 수 있으며, 판독문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판독문에는 다소간의 오류가 발견되고 있어 원전 자료의 면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1308년 3월 묵서는 명문이 있는 수덕사 건축부재 중 연대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지원년무신삼월일(至元年戊申三月日)’이라는 묵서를 통해 1308년 3월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에서는 ‘지원년(至元年)’으로 적혀 있지만, 중국 원(元)의 지원 연간(至元 年間, 1335-1340)에는 ‘무신(戊申)’에 해당하는 갑자(甲子)가 없다. 따라서 이 기록은 함께 발견된 수덕사 대웅전의 여러 기록과 마찬가지로 ‘지대원년무신(至大元年戊申)’, 즉 1308년(고려 충렬왕 복위 10)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내에서 발견된 1308년 묵서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인 3월에 작성되었으며, 남벽 동복주(南壁同腹柱)와 법근(法根), 행지(行之)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동복주는 글자 그대로 기둥 부재를 의미하는지, 동량(棟梁)과 마찬가지로 소임의 명칭을 건축 부재로 표현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법근(法根), 행지(行之)는 인명으로 추정되며, 4월 13일 지정(地定) 묵서와 4월 24일에 작성된 상량문(上梁文)에도 보인다. 스기야마 노부조의 조사자료에 사진과 판독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八號木◯銘’이라는 주기가 달려 있다.
원문
南壁
同腹柱 法根 行之 ◯…
作時至元年戊申三月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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