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에 작성된 정혜사 능인선원 상량문에는 모두 3차례에 걸쳐서 암자를 이동한 일이 적혀 있는데, 첫 번째는 왼쪽 골짜기 50보 위이고, 두 번째는 오른쪽 골짜기 15보 위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러 대중들이 지금 현재의 자리가 가장 적법하다고 하여 이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1938년 5월 6일에 기초 공사를 시작하여 5월 18일에 상량하였고, 현재 자리는 간좌 곤향(艮坐 坤向), 즉 남서향으로 자리 잡았다고 기록하였다.
이 상량문에서 눈여겨 볼만한 기록은 시주자 명단에 등장하는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이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로,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번역문
상량문
제법은 종본 이래로 항상 자체가 적멸의 상이다.
불자들이 도를 다 행한다면 내세에는 부처를 이루리라.
본 암의 첫 번째 창건은 왼쪽 골짜기 50보 위이고, 두 번째 창건은 오른쪽 골짜기 15보 위이다. 그러나 대중들이 말하기를 그 두 곳은 혈자리가 아니고, 이 터가 ‘바른 혈자리’ 혹은 그대로 ‘정혈’라 말하므로 이 터로 이전하였다. 때는 불기 2965년 무인 음력 5월 6일 인시에 기초 공사를 해서 동월 14일 오시에 기둥을 세우고 동월 18일 오시에 상량하였다. 두 번째 창건은 계좌 정향이고, 이번에는 간좌 곤향이다.
원문
上樑文
諸法從本來。常自寂滅相。佛子行道己。來世得作佛。本庵第一創建은。左谷五十步上이오。第二創建은。右谷十五步上이나。然이나大衆이云。此二處은非穴이요。此基가正穴이라云하기로。移轉於此基也。時은佛紀二九六五年戊寅陰五月初六日寅時。開基。仝月十四日午時。立柱。仝十八日午時。上樑。第二創建은癸坐丁向。此寺은艮坐坤向。
籌室 滿空月面
立繩 龍吟法泉
禪德 古峰景煜
石庵明烈
持殿 重錫
秉法 宗協
獻食 海山 應常
知客 智煇 道益
看病 鳳鳴
掃地 性觀
淨桶 道明
磨糊 德化
茶角 振龍
侍者 修業
鍾頭 錫元
米監 慧權
園頭 性鍊
供司 大圓 慧明
菜供 智明
勤學
火臺 永俊
別座 大玄
院主 灵雲
都監 東煥 東煥
住持 碧草 鏡禪
化主 善福
應柱
性修
聖一
道德
妙仁
正覺
道善
法喜
荷葉
應咸
奉業
再弘
滿淨
灵明
修仁
自由
性煥
慧然
性悟
法能
慧敏
永浩
道近
修一
修鏡
次順
蓮順
元明
修空 慧眞
西耕 金牛
鶴松 浩然
完山 妙法
唯心 龜性
法印
是一
鍾黙
志淳
天壽
玄穆
唯一
鍾玉
泰根
西湖 世愚
道煥
道成
元玉
守節
法允
修心
儀正
性允
性覺
法眞
明順
智安
漢圭
相讚
朱太
地士 金焚堂 居士
都片手 金德熙
崔鳳洙
田溶羲
文玉童
張東日
鄭金石
李順道
石工 朴永執
張聖善
都善子
李利魯
淸信女 李大願行
淸信女 朴上品華
淸信女 羅惠錫
大施主 張日光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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