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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조인정사 상량문

조인정사(祖印精舍)는 1916년에 대웅전 정면에 건립했던 건물로, 현재는 해체 후 이전하여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상량문은 조인정사의 원래 위치에 있을 때 중수한 기록이다. 글은 가산 김수곤(迦山 金水坤, 1873∼1950)이 썼는데, 그는 독실한 불자로 법주사나 금산사 등에 많은 불사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말년에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에게 설법을 듣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내용은 수덕사의 역사와 만공 스님의 행적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조인정사 중수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파한 후, 조인정사 상량에 대한 게송으로 글을 끝마치고 있다. 조인정사 건립 후 첫 중수에 대한 기록이자, 만공 스님의 언질과 참여 인원들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어 가치가 크다.
번역문
상량문 수덕은 옛 가람의 이름이다. 전하는 말을 들으니 원효조사가 처음 창건했다고 하고, 고려 때에는 공주가 중수했다고 한다. 아득히 옛 행적은 물이 흐르듯 허공에 구름이 가듯이 사람과 문화가 다 사라지고, 단지 그 이름만 지키고 있을 뿐, 나머지는 이 옛터가 되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마치 실제로 그 절을 걷고 있는듯 하다. 수행도 없고 덕도 없다면 오호라, 덕을 닦지 않았다면 어찌 그 이름이 남아있겠는가. 오호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다가 망하고, 망했다가 다시 부흥하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떤 것이 가고, 오고, 흥하고, 망하는 것인가. 만약 능히 도를 얻는다고 하면 이미 도를 얻지 못함이니, 필경에 이 무엇인가. 용봉산 정상의 구름은 희고, 안면도의 바닷물은 푸르도다. 나의 스승 만공화상은 뛰어난 자질로서 일찍이 옛 사람이 쉬었던 곳에 오셨다. 이 산에 28년을 주석하면서 수행 도반들과 같이 동고공락하였다. 항상 禪會를 여시고, 그 뜻을 게을리하지 않으셨으니 진실로 우뚝 솟은 일세의 큰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문득 어느 날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와 그대 모두 지금은 늙었는데, 이 산 남쪽에 허물어진 절을 수리할 사람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실로 세상사람들이 나의 도가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에 연유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세우지 않으면 후세인들이 비록 나의 도를 듣고자 하여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수리하지 않는다면 후에 사람이 비록 도를 묻고자 하여도 반드시 쉽게 용납하지 못할 걸세.”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은혜가 높고도 크구나, 덕을 닦을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일어나 재배하며 말씀드리기를, “스승님의 지극한 뜻을 가히 가슴속에 새겨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조인정사 규모는 대략 수십여 칸이다. 도량은 생기가 돌아 아름답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욱 빛난다. 뒷날을 걱정하자면 이것을 계승하여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 더욱 수행하고 더욱 덕을 쌓아서 절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공이네, 색이네 하며 몽둥이질 세 번과 사람들의 안목에 용마루가 날개를 활짝 폈다네. 밝은 달은 창문 사이로 비추고 주렴 밖은 맑은 바람, 천여 명의 납자들이 항상 덕숭산에 사네. 불기 2959년 임신 4월 15일 오시 가산거사 김수곤 삼가 기록하다. 산중질 당사 대중 주실 만공 월면, 선덕 삼공 각원, 성월 경순, 서호 세우, 용음 법천, 학송 호연 대중 순권, 유심, 정운, 경선, 법인, 동진, 덕륜, 영운 도환, 천수, 낙범, 원명, 태근 정혜대중 해산, 야은, 낙원, 동환, 명현, 현기, 대은 견성암 대중 비구니 성근, 귀완, 응주, 성욱, 혜오, 선종, 도성, 자영, 법희, 지선, 도덕, 응준, 영우, 대운, 덕화, 성수, 원옥, 원명, 보광, 종인, 국전, 계명, 혜연, 태주, 혜권, 재홍, 성진, 원익, 봉업, 선우, 대련, 원정, 선복, 성오, 지현, 혜일, 수업, 지명, 진복, 봉순, 성윤, 묘련, 봉순 금강암 두은, 보안, 유일 연화질 중건주 만공 월면, 도감 서호 세우, 별좌 용음 법천, 원주 경선, 별공 천수, 원 명, 태근, 공사 도환, 화대 이상순, 신병문, 화주 김수곤 목수질 감독 김기홍, 편수 김덕희, 절목 김중호, 서기 정헌태, 공사 김동규, 신정균, 장무 김광달, 좌상 김학경, 오춘석, 김현태, 김중현, 김사성, 윤세균, 석공질 장석관, 박영집, 원정칠 단월질 청신사 계유생 김수곤, 청신녀 을해생 이대원성 청신사 정축생 이천관(망), 청신녀 경진생 김천진불, 장자 기유생 이용길 청신사 정유생 이씨, 청신녀 갑신생 김은현성, 장자 임자생 이성길, 차자 무 오생 이수길, 삼자 경신생 이명길 청신녀 갑신생 장일광화, 청신녀 병신생 김자원성, 청신녀 병신생 김구품화, 동녀 신유생 인희 청신사 갑오생 장기황, 장자 계축생 장덕진, 차자 임자생 장창진, 청신녀 정 사생 오지월화 청신사 기축생 이기용, 청신녀 무자생 김대광명 청신녀 은무변각, 은청정각, 오대선행, 고원각심 청신사 강태섭, 청신녀 김씨 비구 보영 청신녀 국선제행, 진대제행 경신생 강봉섭, 갑자생 장동환 청신녀 경자생 남궁봉룡
원문
上樑文 修德古伽藍名也傳聞元曉和尙之始創建而麗代公主之所重修云耳悠悠古蹟水流雲空人文俱失只守其名而餘是墟則不睹是人而如踐其實也無修無德安有是名嗚呼古往今來興而廢廢而復興到者裡那箇是往耶來耶興耶廢耶若能道得則己不能道得則畢竟是箇什麽龍鳳山頭雲白白安民島外水蒼蒼我禪師滿空和尙以超倫之資早到古人休歇之地住錫於玆山二十有八年與其法侶同喫甘苦常設禪會而不怠其志眞可謂卓卓然一世之大宗匠也何喜何幸忽一日向余而言曰吾與君俱今老矣此山之南有寺荒凉修葺無人豈不慨然哉實由世人之不知吾道如何故耳今不創修則後之人雖欲問道必不容易矣 佛恩巍巍兮修德其人安在余起再拜曰 師之盛意可不銘佩乎因作此室略數十餘間也道場生彩 佛日又輝後之有感於斯者繼而不朽則增修增德庶不愧於寺名 頌曰 空耶色耶棒下三連。人天眼目棟檻翼然 頌曰 窓間明月簾外淸風千衲時住德崇山中 佛紀二千九百五十九年壬申四月十五日午時 佛紀二千九迦山居士 金水坤 謹記 山中秩 當寺大衆 籌室 滿空月面 三空覺源 聖月敬順 西湖世愚 龍吟法泉 嶋松浩然 順權 惟心 正運 鏡禪 法印 東震 德綸 靈運 道煥 千壽 樂梵 圓明 泰根 定慧大衆 海山 野隱 樂圓 東煥 明顯 玄機 大隱 見性庵大衆 比丘尼 聖根 貴完 應舟 性旭 慧悟 善宗 道成 自英 法喜 知善 道德 應俊 英佑 大雲 德化 性修 元玉 元明 普光 宗仁 國典 戒明 慧然 太柱 慧權 明顯 玄機 大隱 再弘 性真 圓益 奉業 善佑 大蓮 源貞 善福 性悟 智玄 慧一 守業 智明 真福 奉順 性允 竗蓮 奉順 金剛庵 斗恩 普安 惟一 緣化秩 重建主 滿空月面 都監 西湖世愚 別座 龍吟法泉 院主 鏡禪 別供 千壽 圓明 泰根 供司 道煥 火臺 李相淳 申炳文 化主 金水坤 木手秩 監督 金基洪 片手 金德熙 絶木 金重鎬 書記 鄭憲泰 公事 金東圭 檀越秩 淸信士癸酉生 金水坤 淸信女乙亥生 李大圓性 淸信士丁丑生 李天觀 淸信女庚辰生 金天眞佛 長子己酉生 李竜吉 乾命丁酉生 李氏 淸信女甲申生 金隱現性 長子壬子生 李成吉 次子戊午生 李秀吉 三子庚申生 李命吉 淸信女甲申生 張日光華 丙申生 金自願性 重建主 滿空月面 都監 西湖世愚 別座 龍吟法泉 院主 鏡禪 別供 千壽 圓明 泰根 供司 道煥 火臺 李相淳 化主 金水坤 申炳文 木手秩 監督 金基洪 片手 金德熙 絶木 金重鎬 書記 鄭憲泰 公事 金東圭 丙申生 金九品華 童女辛酉生 仁熙 乾命甲午生 張基黃 長子癸丑生 張德眞 次子壬子生 張昌眞 淸信女丁巳生 吳池月華 乾命己丑生 李琦容 坤命戊子生 金大光明 淸信女 殷無邊覺 殷淸淨覺 吳大善行 高圓覺心 乾命 姜泰燮 坤命 金氏 比丘 普英 淸信女 鞠善濟行 陳大濟行 庚申生 康奉燮 甲子生 張東煥 坤命庚子生 南宮鳳龍 申晶均 掌務 金光達 座上 金學經 吳春錫 金顯泰 金仲鉉 金思成 尹世均 石工秩 張錫瓘 朴英執 元正七 佛紀二九五九年壬申四月十五日午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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