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사적기(修德寺事蹟記)」는 『덕숭산정혜사(德崇山定慧寺)』 서적 내에 실려 있다. 쓰여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덕숭산정혜사(德崇山定慧寺)』 서적 내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최소 1946년 이후로 추정된다. 내용은 수덕사의 창건 인물과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대웅전이 보물 238호로 지정되었다는 것[1]오가와 게이키치의 조사로 그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1935년 보물 제238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대웅전 관련 문화재에 대한 언급, 마지막으로 수덕사를 크게 중창한 만공선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번역문
「수덕사 사적기」
국보 대가람 덕숭산 수덕사는 신라의 원효 조사 창건이라고도 말하고, 백제의 숭제(崇濟) 법사가 설법한 곳이라고도 말한다. 동쪽의 수덕고개로부터 서쪽은 학서암, 금강암이 있고, 남쪽은 노적봉, 북쪽은 정혜사, 견성암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평의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다. 경내 곳곳에 비록 깨진 형태로 남아있는 무수한 불상, 부도, 탑대석, 비석대, 축대 등이 도처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창건 연대가 지극히 멀고, 그 규모 또한 웅장했음은 이로써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굴지의 역사적 고찰(古刹)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허물어져서 지금 남아있는 유물은 불과 몇 개밖에 되지 않지만 그 예술적 가치는 아직도 훌륭하게 빛나고 있다. 유물들을 보면, 지난 신라와 고려시대 아름답게 빛나던 불교문화의 황금상을 분명하게 회상하고 추모하기에 넉넉하다. 보물 제238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그 설계가 치밀하고 정묘한 점과 그 구조의 화려하고 웅장함은 세계적으로 훌륭한 작품으로서 국내외 건축계의 절찬을 받고 있다. 대웅전 안의 벽화는 고려회화의 대표적 걸작으로 이미 초등학교 교과서에 까지 실려 있다. 고려식 석축으로 인정된 상하 양단의 축대는 그 축조 기술이 교묘해서 현대 공학계의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었다. 또 『덕산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원효스님의 친필 '불복치(佛腹蚩, 부처님 뱃속의 벌레)'라는 석각 글씨는 땅속에 묻혀있는데, 이것은 아직도 고고학계의 커다란 수수께끼이다. 때마침 정혜사에 능인선원(能仁禪院)을 개설해서 마음을 보고 도를 깨닫는[觀心悟道] 문을 열어 전국의 대중들을 제접(濟接)하던 만공선사께서 당사의 문화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직접 수호의 책임을 다하였다. 소화 3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서 큰 방, 요사채, 별채, 수각(水閣) 등을 비롯하여 무릇 80여 칸의 대가람을 짓고 계속해서 국고 보조로 대웅전을 보수하여 정혜사, 견성암과 함께 덕숭총림의 대단한 수선도량을 완성하였다.
원문
「修德寺事蹟記」
國寶大迦藍, 德崇山 修德寺! 或은 新羅元曉祖師 創建 云하고, 或은 百濟 崇濟法師 說法 云할 뿐만 아니라, 東은 修德嶺으로부터 西는 鶴棲菴, 金剛菴, 南은 露積峯, 北은 定慧寺, 見性菴에 이르기까지, 無慮 數十萬坪의 廣範한 地域에 걸쳐, 비록 破形 或은 遺基로나마 無數한 佛像, 浮圖, 塔臺, 碑基, 築石 等이 到處에 散在해 잇는 겄으로 보아, 그 創造年代가 極히 멀고, 그 規模 또한 宏壮하였음은, 이제 能히 推測할 수 있는 바이다. 이렇든 靑邱屈指의 歷史的 古刹이, 時運에 딸어 漸〃 허무러져 가게 되여, 只今 남어 있는 遺物은 不過 二三의 少數에 지나지 않으나, 그 藝術的 價値는 아즉도 燦然한 바 있어, 吾人으로 하여금, 지나간 羅麗時代 佛敎文化의 黃金相을 如實히 回想 追慕케 하기에 넝넉하니, 寶物 第二三八號로 指定된 國寶 建物大雄殿은, 그 設計의 緻密精妙한 点으로 보아, 그 構造의 蕐麗雄壮한 点으로 보아 實로 世界的 逸品이라고 內外 建築界에 絶贊을 받고 있으며, 大雄殿 內의 壁畵는 高麗繪畵의 代表的 傑作으로, 임이 國民學校 敎科書에까지 登載되었으며, 高麗式 石築이라고, 認定되는 上下 兩段의 築臺는, 그 築造技術이 巧妙하야 現代 工學界의 重要한 硏究對象이 되여 있고, 또 비록 地下에 埋没되여 있을 망정 德山邑誌에 明記되여 있는 元曉스님의 親筆 「佛腹蚩」는, 아즉도 考古學界에 커드란 수수꺽기가 되여 있는 겄이다. 때 마침 定慧寺에 能仁禪院을 開設하고, 觀心悟道의 門을 열어 八表大衆을 濟接하든 滿空禪師, 當寺의 文化寶에 格別한 關心을 갖이고 直接 그 守護의 任에當함과 同時에 昭和三年으로부터 數年에 걸쳐 大房, 寮屬, 別舍, 水閣 等 凡八十餘間의 大伽藍을 建造하고, 繼하야 國庫補助로서 大雄殿을 改修하야 定慧寺, 見性菴과 함께 德崇叢林의 一大修禪道場을 完成한 겄이다.
관련주석
- 주석 1 오가와 게이키치의 조사로 그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1935년 보물 제238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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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대환희대(歡喜臺)는 1926년 창건된 비구니 도량으로 수덕사 중심 예불 영역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m 떨어져 있는 본래 절과 가장 가까운 암자이다. 만공(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이 처음 자리 잡고, 지금의 환희대 원통보전(圓通寶殿) 뒤 바위에 앉아 ‘환희대’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환희대는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원(比丘尼禪院)으로 알려진 견성암(見性菴)이 창건된 곳이다. 1910년 비구니 도흡(道洽, 1800년대 후반~20세기 중반)이 여성 선원을 처음 연 이래, 1966년 견성암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가기 전까... -
견성암견성암은 덕숭총림의 비구니 도량이자,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다. 수덕사 중심 경내에서 서쪽으로 약 250m 떨어져 있는 덕숭산 중턱에 동북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근대기 시인이며 수필가인 일엽(一葉)스님이 머물다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1908년 비구니 도준(道俊)이 개인가옥으로 지었던 것을 1910년 비구니 도흡(道洽)이 매수해서 여성선원으로 만들었다. 현재 건물은 1938년에 만공선사가 다시 지은 것이다. 창건 시에는 지금의 환희대(歡喜臺)에 견성암이 있었으나 현재 위치로 옮긴 것으로 1965년 벽초스님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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