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이였다. 독립운동가이자 대각사상 및 사찰자립을 실천한 승려이다.
〈그림1〉용성 진종 진영(대각사)
용성 진종(龍城震鍾, 1864-1940)은 법호가 용성이고, 법명이 진종이다. 14세에 남원의 덕밀암에서 출가하였으나 부모의 반대로 귀가하였으며, 16세에 해인사 극락암에서 재출가 하였다. 19세에 파주의 보광사 도솔암에서 진언수행 중 홀연히 의심이 일어나 의정을 품고 6일 만에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에는 ‘무자화두(無字話頭)’를 참구하여 공(空)을 체험함으로써,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에 용성이 읊었던 오도송이 다음과 같다.
구름을 헤치고 안개를 걷으면서 문수를 찾다가
비로소 문수에 이르니 넓고 텅 빈 듯이 공하구나!
색은 색이고 공은 공이여, 다시 공으로 돌아가고
공은 공이고 색은 색이여, 거듭하여 무진하구나!
이후 22세에는 송광사 삼일암에서 무자화두를 참구하며, 『전등록(傳燈錄)』을 열람하다가 세 번째 깨달음을 얻었으며, 23세에는 삼일암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구미의 낙동강변을 지나다가 네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용성은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고서도 선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더불어 각 분야의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문답을 하고, 경전을 통해 점검해 나아갔다. 용성은 스스로의 수행경험을 기반으로 모든 중생이 갖고 있는 불성을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을 깨우치도록 돕는 대각사상을 확립하였다. 또한 간화선이 최고의 수행임을 강조하였으며 동시에 진언수행과 교학관법, 정토수행 등을 수용하여 다양한 수행법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였다.
44세에는 중국으로 가 북경의 관음사 및 보타산 등지에서 중국 승려들과의 법거량(法擧揚)을 통해 그들의 아만을 일러주고, 한국 불교계율의 특색인 서상수계(瑞祥受戒)의 전통을 전파하였다. 중국에서 귀국 후 신도들을 지도하고 설법하였으며, 당대의 선사들과 선문답을 하였다. 또한 산중 사찰에서 머물다가 도시로 나와 대중 포교를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한국 원종(圓宗)이 일본 조동종과 맺은 조약을 비판하고 부정하면서 임제종이 등장하였는데, 49세에는 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 개교사장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 개교사장에 취임하여 만해(萬海) 한용운과 함께 주석하였다.
56세인 1919년에는 3·1 독립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서명하였다. 용성선사는 이를 빌미로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도 불교 대중화를 위해 역경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고, 출소 후 경전 번역 및 신문 잡지 등의 기고를 계속 하였다. 63세에 총독부에서 주지가 되려면 비구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승려로써 아내를 두고 고기를 먹는 대처식육(帶妻食肉) 반대하여 건백서(建白書)를 총독부에 제출하였으며, 64세에 대각사에서 대각교를 창립하여 지부를 두고 연변 명월촌과 봉년촌의 대각교당에서 농장을 운영하였다. 용성은 선수행을 강조하면서 사찰의 자립을 위해 농사를 짓고 수행해야한다는 선농일치운동(禪農一致運動)을 전개하였다.
그는 승려의 대처식육과 사찰재산의 매각(賣却) 등의 이유로 종단을 탈퇴하였으며, 대각사에서 세수 77세, 법납 63세로 입적하였다. 해인사 용탑선원 옆에는 용성대선사 사리탑비(龍城大禪師 舍利塔碑)가 있다. 입적 후 1962년에는 정부에서 독립운동의 공로를 기려 건국 공로훈장을 수여하였다.
저술로는 『선문요지(禪門要旨)』 및 불교에 대한 주자학과 기독교의 비판을 반론한 『귀원정종(歸源正宗)』, 『불문입교문답(佛門入敎問答)』, 『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 『신역대장경 금강경강의(新譯大藏經 金剛經講義)』, 『금강마하바라밀경(金剛摩訶波羅蜜經)』, 『수능엄경 선한연의(首楞嚴經 鮮韓演義)』, 『각정심관음정사 총지경(覺頂心觀音正士 摠持經)』, 『금비나동자위덕경(金毗羅童子威德經)』, 『팔상록(八相錄)』, 『선문촬요(禪門撮要)』, 『선한문선문촬요(鮮韓文禪門撮要)』, 『대방광원각경(大方廣圓覺經)』, 『상역과해 금강경(詳譯科解 金剛經)』, 『대각교 의식(大覺敎 儀式)』, 『각해일륜(覺海日輪)』,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관정복마경(灌頂伏魔經)』, 「대각교 제칭 이유서」, 『각설범망경(覺說梵網經)』, 『청공원일(晴空圓日)』, 『대각교 관정사 유헌(大覺敎 灌頂師 遺憲)』, 『수심론(修心論)』, 『석가사(釋迦史)』, 『임종결(臨終訣)』, 『오도(吾道)의 진리(眞理)』, 『오도(吾道)는 각(覺)』, 『육자영감대명왕경(六字靈感大明王經)』, 『천수경(千手經)』, 『지장보살 본원경』등이 있는데, 최초의 저술인 『선문요지』는 산실되었다.
번역서로는 『범망경연의(梵網經演義)』, 『수심정로(修心正路)』, 『상역과해 금강경(詳譯科解 金剛經)』, 『화엄경(華嚴經)』, 『조선글 화엄경』, 『팔양경(八陽經)』, 『조선어 능엄경』, 『조선글화엄경』이 있으며, 기고문으로는 「낙소만화(落笑謾話)」, 「빈주역연(賓主歷然)」, 「논선가제종이해(論禪家諸宗異解)」, 「낙초지담(落草之談)」, 「파소론(破笑論)」, 「선화루설(禪話漏說)」, 「인연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역(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譯解)」, 「세계기시론(世界起始論)」, 「불선변이론(佛仙辨異論)」, 「중앙행정(中央行政)에 대한 희망(希望)」, 「유심유물불이론(唯心唯物不二論)」, 「염송(拈頌)」, 「화두법이라」, 「나의 참회록(懺悔錄)」등이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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