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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영신(田岡永信)

대한불교조계종의 장로를 역임한 선종 제 77대 법맥의 전수자이다.
〈그림1〉전강 영신(용화선원)
전강 영신(田岡永信, 1898-1974)은 법호가 전강이고 법명이 영신이다. 어려서 어머니와 동생, 아버지를 여의고 전국을 떠돌다 16세 때 전남 곡성의 관음사에서 출가하였다. 그러나 주지의 막행막식에 실망한 전강은 해인사에서 인공(印空)스님을 은사로 재 출가하였다. 참선 수행을 통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어느 노승의 게송을 들은 이후 화두를 깨치기 위해 용맹정진 하였는데 전강이 주로 참구했다는 화두는 앞 이빨에 터럭이 낫다는 뜻의 ‘판치생모(板齒生毛)’와 ‘무자 화두(無字話頭)’였다. 무자화두를 들고 곡성의 태안사를 가던 길에 참구하던 무자 화두가 사라지면서, “운무(雲霧)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소를 찾겠느냐? 담넘어 참외를 따오너라”라는 말이 뇌를 쓰치며 무자 화두를 타파하였다. 깨달음을 얻은 선사의 오도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어젯밤 달빛은 누각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昨夜月滿樓 窓外蘆花秋 佛祖喪身命 流水過橋來
깨달음을 얻은 전강은 당대의 선사들을 만나서 인가를 받았는데 1923년에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에게서 인가를 받지 못하자, 다시 ‘판치생모(板齒生毛)’라는 화두를 잡고 정진하여 만공에게 선종 제77대 법맥을 전수 받았다. 이후 전강은 담양의 보광사 및 인천의 보각사 등 전국의 사찰 및 선원에서 조실을 역임하였으며, 인천의 용주사 용주선원에서 후학을 지도 하였다. 그는 세수 77세, 법랍 61세로 입적하였는데 입적할 때까지 10여 년간 새벽마다 수행자들에게 설법을 하였으며, 700여시간 분량의 육성테이프가 남아있다. 송담, 운곡, 전공 등 50여명의 전법제자와 200여명의 손상좌가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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