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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중원(漢巖重遠)

경허스님의 법을 이은 고승으로 일제 강점기때 봉은사 조실을 지내고,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한 승려이다.
〈그림1〉한암 중원 진영(불교신문)
한암 중원(漢巖重遠)의 호는 한암(漢巖, 1876-1951)이고 법명은 중원(重遠)이다. 1876년 3월 27일,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방중원(方重遠)이고 유년기에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20세 때 금강산에 구경 갔다가 발심하여 장안사(長安寺)에서 출가하였다. 금강산 장안사의 금월행름(錦月行澟) 선사를 모시고 수행하였으며, 금강산 신계사(新溪寺)의 보운강회(普雲講會)에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을 읽고 마음이 크게 열렸다. 이후 1899년에 청암사(靑巖寺) 수도암(修道庵)에서 경허(鏡虛) 선사를 만나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듣고 오도(悟道)하였다. 이후 범어사, 통도사, 해인사 등에서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고 1904년 29세가 될 때 통도사의 내원선원 조실로 추대되었다. 1912년에는 통도사를 떠나 우두암(牛頭庵)에 들어가 홀로 정진하며 깨달음 뒤의 공부를 계속하다 마침내 대오(大悟)하였다. 1923년 서울 봉은사(奉恩寺)의 조실로 추대되어 잠시 머물렀다가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으로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1941년 조선불교 조계종이 출범되었을 때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었다. 1951년 1·4후퇴 당시 퇴각중인 국군 장교가 스님이 주석하던 상원사 절을 불태울 것을 알리자, 스님은 법당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불을 지르라고 하였다. 이에 장교는 법당의 문짝만 떼어 불사르고 돌아갔다. 1951년 2월 14일에 입적 당시 시대는 전란 중이었기에 간소히 다비하여 49재는 부산 묘심사에서 거행하였고, 이후 문중들이 스님의 부도와 비석은 상원사에 모셨다. 제자로는 보문(普門)·난암(煖庵)·탄허(呑虛) 등이 있고, 후학들에게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강조하였으며 계정혜 삼학을 지킨 큰 스님이자 율사, 올곧은 수행자로 지칭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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