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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즉원(晶巖卽圓)

조선후기 미황사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자비와 보시에 힘쓴 선사이다.
〈그림1〉정암당 진영(국립중앙박물관)
스님의 법명은 즉원(卽圓)이고 자는 이우(離隅)이며, 호는 정암(晶巖, 1738-1794)이다. 3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미황사(美黃寺)의 재심(再心) 아래에서 자랐다. 16세에 스님이 되었으며 20세부터는 송파 각훤(覺暄)스님의 사집(四集), 사교(四敎)의 가르침을 받았고 연담 유일 스님에게 교리를 배웠다. 30세가 되어 송파(松坡)의 법을 이어받고, 40세에 설봉에게서 선(禪)을 참구하였다. 정암(晶巖)의 생애는 빈손으로 와서, 마음을 비우고 무심(無心)도인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떠난 무소유(無所有)의 삶이었다. 걸인이 찾아오면 자신이 먹을 것 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내주어서 ‘정암선사께 가서 곡식을 얻어오는 자가 있다면 걸인들 사회에서 추방하자’라고 선언될 정도로 남을 돕는 명성이 높았다. 1794년 (정조 18)에 궁복도(弓福島)의 암자에서 나이 56세, 법랍 41세로 입적하였다. 정암(晶巖)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배우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중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연파 혜장(蓮坡 慧藏)이 있다. 연파(蓮坡)는 매년 5월 12일 정암의 입적일에 재(齋)를 올렸다. 그 후 어느 해에 정암의 문도들을 모아 탑비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비문을 정약용이 짓게 하여 스님을 기리었다.
여섯 창문(六牖, 육근) 단속 못하자 주인이 치달리니 오탁(五濁) 세계에서 탐(貪)·진(嗔)·치(癡)에 빠지는구나 범은 조복이 가능하나 사심은 조복하기 어려워 팔만 해조음(海潮音) 있건만 행실은 비뚤어지네 그 누가 실천하나? 즉원(即圓) 선사가 실천하니 자신은 추워도 남을 입히고 당신은 배고파도 남을 먹이셨네 맹수도 순종하고 걸인들도 자비심 가졌거늘 아! 네거리 길 가지 않고 굽은 길로 가시었네 슬퍼하고 아쉬워하면서 겨우 비명을 지었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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