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 희언은 법성원융의 이치를 깨닫고 평생 묵언수행 하며 맹렬히 정진한 선사이다.
선사의 법명은 희언(熙彦), 호는 고한(孤閑)이며[孤閑熙彦, 1561-1647] 함경북도 명천(明川)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칠보산 운주사(雲住寺)에 들어가 이듬해 스님이 되었고, 이곳에서 18년 동안 머물면서 경론(經論)을 공부하였다. 이후 일대사(一大事)를 밝히고자 덕유산의 부휴 선수(浮休善修)를 찾아가 3년을 모시면서 ‘법성원융(法性圓融)’의 깊은 뜻을 터득하였다. 희언은 누더기와 맨발로 여위고 초라한 행색을 하였지만, 지극히 부지런하여 공부에 게으름이 없었다. 명성을 싫어했으며 공양물을 사양하는 등 도력(道力)을 숨기고 오로지 정진할 뿐이었다. 그러나 간절하게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법성원융‘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희언은 평생에 묵언(默言) 수행을 하면서, 왕래하는 사람에게는 합장하며 다만 “성불(成佛)”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1622년에 광해군이 광주(廣州) 청계사(淸溪寺)에서 수륙재를 크게 열고 희언을 증사(證師)로 청하였다. 선사는 재(齋)가 끝난 뒤 금란가사(金欄袈裟)를 내려놓고 몰래 도망하였다. 1642년(인조 20) 팔공산에 있을 때 벽암 각성(碧巖覺性)을 만나 형제처럼 지냈으며, 이후 가야산으로 옮겨 초암을 짓고 은거하였다. 몇 년 후 다시 각성과 함께 속리산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647년(인조 24) 11월 22일에 세수 87세, 법랍 74년으로 입적하였다.
〈그림1〉고한 희언의 임종게(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고한 희언의 임종게〉
“공래세상(空來世上) 특작지옥재의(特作地獄滓矣)
명포체림(命布體林) 록이사육수(麓以飼育獸)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 / 지옥의 찌꺼기만 만들고 가네
내 뼈와 살을 저 숲속에 버려두어 / 산짐승들 먹이가 되게 하라.”
제자는 엄중히 가려 전법(傳法)한 각원(覺圓), 영주(永周), 종열(宗悅) 3명만 있다. 유언을 따르지 못한 제자들이 다비(茶毗)하니 정골(頂骨)이 튀어 소나무 가지에 걸렸다고 한다. 사리와 정골을 나누어 팔공산과 가야산, 속리산에 탑을 세웠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
백곡집(白谷集)
더보기 +
-
조선불교통사(佛敎通史)
-
이조불교
-
한국불교 위대한 대선사 1권
-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 향적 스님의 선시해설
-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
-
꽃은 피고 물은 흐르네
-
韓國佛敎融通史
-
선시감상사전·[1], 한국편
-
광해군의 불교인식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