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암 세찰은 약탄(若坦)의 법을 이은 부휴계(浮休系) 벽암문파(碧巖門派)의 고승이다.
〈그림1〉풍암세찰(楓巖世察)(불교신문)
선사의 법명은 세찰, 호는 풍암이며[楓巖世察, 1688-1767]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대구 동화사(桐華寺) 철웅(哲雄)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당대 화엄학으로 이름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수연의 입적 후 약탄의 제자가 되어 부휴계의 정맥을 이었다. 세찰은 개당(開堂)하여 학인을 지도할 때 가풍의 준엄함을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1759년(영조 35) 순천 모후산(母後山) 대광사(大光寺) 영천암(靈泉庵)에서 묵암 최눌(默庵最訥)에게 법을 전한 뒤 은거하여 수도(修道)에 전념하였다.
세찰의 자세한 행장은 전하지 않으나, 『묵암집(默庵集)』 끝부분 최눌 행장에 ‘최눌이 그를 위해 송광사에서 대법회를 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풍암의 입적 연도는 1759년으로 추정한다. 그의 법계는 부휴 선수(浮休善修) - 벽암 각성(碧巖覺性) - 취미 수초(翠微守初) - 백암 성총(栢庵性聰) - 무용 수연- 영해 약탄 - 풍암 세찰 - 묵암 최눌로 이어진다.
다음은 묵암최눌(黙庵最訥)이 풍암세찰(楓巖世察)을 위해 지은 상찬(像讚)이다.
준제보살의 지혜광명으로 평생을 굽어 우러러보시고
기린을 채찍하고 봉황을 매질하듯 강론으로 경을 전하니
영골 영주가 섞여 있음이 일상적이나 말없이 가르치시니 모두가 놀란다.
명주에 모습을 그려 전각 벽에 걸어놓고
참모습으로 예경함이 또 다른 탑을 대하는 것과 같고
제방의 절에 두루 퍼져서 한 문중으로만 남게 하지 않으시니
나아가지도 떠난 것도 아니어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출처: 불교신문, 풍암세찰, 2016.06.15.〉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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