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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 시오(縞衣始悟)

호의 시오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삼의(三衣)로 불렸으며 『행장기』와 『견문록』을 지은 대선사이다.
〈그림1〉호의대사전(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대사의 법명은 시오, 호는 호의이며[縞衣始悟, 1778-1868] 전남 화순군 동복면 출신이다. 대사의 집안은 대대로 유명한 학자와 나라에 공을 세운 인물들이 계승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가풍을 지녔다. 15세에 아버지를 잃고 16세에 다시 어머니를 여의고 화순 만연사(萬淵寺)로 들어갔다. 그해(1793, 정조 17) 9월, 절에 불이 나서 다음 해 절을 중수하는 데 통정대부(通政大夫)였던 경관(慶冠)이 도료장(都料匠)을 맡아 작업을 지휘하였다. 호의는 중수 불사를 마치고 떠나는 경관을 따라가 은사로 모시고 스님이 되었다(1796). 이후 백련 도연(白蓮禱演) 선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호의는 해남 대둔사 명적암의 대강백 연담(蓮潭)을 찾아가 사집(四集)을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10년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찰과 스님을 참배하며 『능엄경』, 『기신론』, 『반야경』, 『원각경』, 『화엄현담』, 역사서와 고문(古文), 『화엄경』 등을 두루 공부하였다. 은사 경관이 낙상하여 크게 다쳤을 때 호의는 직접 채취한 마가목(馬柯木)을 오래 달여 만든 고약으로 스승께 진상하여 건강을 되찾게 했다. 당시 사람들은 호의의 효성이 극진하여 감응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림2〉대흥사 천불전 부처님(혜운)
1812년(순조 12) 봄에는 완호 윤우(玩虎倫佑)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1817년 호의는 법사 완호를 따라 월성 기림사로 가서 해남 대흥사[대둔사] 천불전에 봉안할 천불상(千佛像)을 옥(玉)으로 만들었다.
〈그림3〉대흥사 천불전(혜운)
천불을 배에 싣고 대흥사로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일본 장기도(長崎島) 축전주(筑前州)에 표착했다가, 이듬해 다시 대흥사로 돌아왔다. 이 일은 풍계 현정(楓溪賢正)이 지은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에 전한다. 호의는 1868년(고종 5) 9월 15일 새벽에 담담히 입적하였다. 세수 91세, 법랍 70년이었다.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호의(縞衣)는 초의(草衣), 하의(荷衣)와 함께 삼의(三衣)로 불리었다. 저술로는 직접 쓴 『행장기』 1권과, 『견문록』 1권이 있다. 제자로는 『동사열전』을 지은 범해 각안(梵海 覺岸) 등이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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