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룡 색성은 불교 경전과 일반 학문에도 조예가 깊은 선승(禪僧)이다.
〈그림1〉수룡이 출가한 두륜사 대흥사(혜운)
선사의 법명은 색성이고 법호는 수룡이며[袖龍賾性, 1777-? or 1845] 전라남도 해남 관촌에서 태어났다. 색성은 어려서 두륜산 대흥사로 출가하여 현해 모윤(懸解慕閏)의 제자가 되었다.
『화엄경』 등 불교 경전에 대한 이해가 밝았으며 일반 전적들도 두루 공부하여 성리학이나 주역, 시문(詩文)에도 조예가 깊었다. 색성은 철두철미한 수행으로 진여실상(眞如實相)을 깨친 후, 연파 혜장(蓮坡惠藏)을 찾아가 더욱 자신의 학문과 수행을 갈고닦았다. 연파는 색성의 공부가 무르익자 불조(佛祖)의 선법(禪法)을 전하면서 ‘소매 속에 갇힌 용’이라는 뜻의 ‘수룡(袖龍)’이라는 법호를 주면서 게으름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이 소식을 듣고 다산 정약용은 수룡 색성을 위해 시를 지어 주었다.
옛적 요숙안(飂叔安)의 자손들이 용을 길렀네.
종이(鬷夷)씨 또한 용을 길들였다네.
누가 그 발자취를 이을 거나
경산(庚山)의 스님이로고
허나 코고는 소리만 들릴 뿐
맡은 일에는 도무지 관심 없었다네.
아아, 좋은 분 색성 스님이여,
언제나 이 점을 거울 삼으시게.
〈그림2〉수룡강사전 1(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신집성문헌,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수룡은 혜장의 문도 중에 으뜸가는 제자였다. 다산이 지은 「색성이 차를 부쳐준 것에 감사하며[謝賾性寄茶]」 라는 시에 “장공의 여러 제자 중에서 색성이 제일로 기특하다네. 화엄의 가르침을 이미 깨치고, 겸하여 두보 시를 배우는구나.”라고 하였고, 또 『아암장공탑명(兒庵藏公塔銘)』에 “두 제자가 있으니 수룡 색성과 기어 자홍이다.”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수룡은 뛰어난 학장(學匠)으로서 뒷날 초의(草衣)와 함께 『대둔사지(大芚寺誌)』의 편집에 참여하였다. 수룡 색성의 전기에는 입적 연대 없이 8월 15일에 북암(北庵)에서 입적하였다고만 밝혀져 있다. 문집 한 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문인으로 서주 의수(犀舟懿修), 철선 혜즙(鐵船惠楫), 태호 세관(太湖世觀) 등이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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