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후기 화엄학에 능통한 선승이다.
최눌(最訥, 1717-1790)은 조선 중후기 선승으로 호는 묵암(默庵), 자는 이식(耳食)이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14세인 1731년 금화산(金華山) 징광사(澄光寺)로 출가하여 만리(萬里)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19세 때 조계산 송광사(松廣寺)의 풍암 세찰(楓巖世察)에게서 경전을 배웠는데 4, 5년 만에 풍암으로부터 모든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호암 체정(虎巖體淨)∙회암 정혜(晦庵定慧)∙용담 조관(龍潭慥冠)∙상월 새봉(霜月璽篈) 등의 대선사들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화엄학에도 조예가 깊어 화엄경의 대의를 총괄한 『화엄과도』를 펴내기도 하였다.
〈그림1〉묵암최눌 진영(불교신문, 정안스님)
연담 유일(蓮潭有一)과 선시는 물론 성리학(性理學)의 핵심을 논하기도 하였다. 최눌이 60세 경 연담과 주고받은 선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인생 황혼이라 귀울림증 생기고
흘러간 60년 광음에 정신도 혼미하구나.
병 깊어 의식(儀) 자주 거르고
선지(禪旨), 생각 깊어도 알지 못하겠네.
헛되이 해탈 말하며 생애를 소모하고
졸음 못 이겨 잠 속에서 삼경을 보내누나.
병 속의 거위를 꺼내는 약이 있다면
생사 일으키는 이들 위해 의사에게 주련만
1770년(영조 46) 해남 표충사 원장으로 부임하였고, 1790년(정조 14) 송광사 보조암(普照庵)에서 세수 73세(법랍 55)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송광사에 비와 부도탑이 있다.
15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와월 교평(臥月敎萍), 봉봉(鳳峰), 성봉 완첨(聖峰玩沾)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저서로는 『화엄과도(華嚴科圖)』 1권, 『제경문답(諸經問答)』 1권, 『반착회요(盤錯會要)』 1권, 『내외잡저(內外雜著)』 10권, 『심성론(心性論)』 1권, 『묵암대사시초 黙庵大師詩抄』 3권 등이 있으며, 한불전 10권에 수록되어 있다. 『묵암대사시초 黙庵大師詩抄』에는 오언절구 40수, 칠언절구 84수, 오언사운 18수, 칠언사운 9수를 수록하였고, 서신에는 편지 16편을 수록하였으며, 소문에는 소(疏)ㆍ권문(勸文)ㆍ상량문(上樑文)ㆍ서(序) 등의 문장 15편을 수록하였다. 책 내용 중〈상완부정후백上完府鄭侯伯〉ㆍ〈상김정랑上金正郞〉ㆍ〈답임진사서答任進士書〉ㆍ〈상여시거사上如是居士〉 등의 편지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불교를 배척하는 유가의 학자들에게 불교의 이치를 설명하며 재가자로서 불도를 수행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득을 펼치는 글이다. 또한〈폐지상소癈紙上疏〉에는 당시 승려에게 부과되었던 종이 만드는 부역(紙役)의 부당한 점을 14개 조목으로 나누어 상언하고 있는데, 당시 승려들의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