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선승으로 대흥사 13대 종사 중 1인으로 선과 화엄을 함께 수행하였다.
지안(志安,1664-1729)은 조선 중후기 선승으로 호는 환성(喚醒)이고 자는 삼락(三諾)이다. 1664년(현종5)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5세인 1678년(숙종 4) 양평의 용문사에서 상봉 정원(霜峰淨源, 1627-1709)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이어 상봉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월담 설제(月潭雪堤, 1632-1709) 문하로 들어가 법을 구했다. 27세 때 금산(金山) 직지사(直指寺)에서 모운 진언(暮雲震言)이 화엄법회(華嚴法會)를 연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갔다. 진언은 당시 벽암(碧岩)의 문하로 화엄의 제일인자였다. 얼마 후 진언은 지안에게 강석을 물려주었다. 항상 책을 놓지 않고, 밥을 먹거나 잠자는 시간도 잊고 부지런히 정진한 결과, 당시 선과 교를 겸비한 종사 중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이후 지안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국내 대부분 명찰에서 법회를 열어 화엄을 전파하였다. 1725년(영조 1) 김제 금산사에서 화엄법회를 열었는데 1400여 명의 대중이 참석하였다. 이 법회에 대중이 많이 모인 것을 유생들이 시기하여 무고(誣告)와 음해를 당해 옥에 갇혔다. 1729년(영조 5) 제주도로 귀향을 갔고 7일 째 되는 날 세수 66세(법랍 51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입적하기 전 “산이 사흘을 울고 바닷물이 솟아 오른다(山鳴三日 海水騰沸).”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그림1〉환성 지안 진영(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통도사)
환성 지안은 틈틈이 시를 썼는데 그 내용이 『환성시집』에 전해지고 있다. 백련암 누각에 300년 이상 걸려 있다가 현재 통도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현판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있다.
동구는 평야로 이어지고
작은 봉우리에 누대 숨긴 곳
기거하는 스님들 게을러 쓸지 않아
떨어진 꽃이 뜰에 가득하네
환성 지안의 비는 2기가 있는데, 1822년(순조22) 홍계희(洪啓禧)가 비문을 짓고 조명채(曺命采)가 쓴 비가 해남 대흥사에 있고, 1944년 동곡 일타(東谷日陀 1929~1999)가 비문을 짓고 애산 송월(涯山淞月 1925-1998)이 쓴 비가 제주시 조천읍 고관사(古觀寺)에 있다.
지안은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를 지었는데, 이 책은 선가의 임제(臨濟)·조동(曹洞)·위앙(潙仰)·운문(雲門)·법안(法眼) 5종 중 임제종(臨濟宗)의 선지(禪旨)를 철저하게 계승하였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화엄사상과 선을 함께 닦는 전통을 남기기도 하여 이후 환성문(喚醒門)의 시조가 되었다. 대흥사 13대 대종사(大宗師) 중 1인이기도 한 지안은 33인의 제자를 두었는데 대표적인 제자로 함월 해원(涵月海源, 1691-1770)을 들 수 있다. 해원은 스승에 대한 글인 「환성화상행장」을 지었고 그 내용이 『환성시집』에 남아 있다.
〈그림2〉환성화상행장(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지안의 저술로는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 1권과 자신의 시를 담은 『환성시집(喚惺詩集)』 1권이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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