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불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선(禪)과 교(敎)를 아울러 수행한 인물로 평가되는 선사이다.
〈그림1〉진묵 일옥(震默 一玉) 진영 (불교저널, 이덕진)
법명은 일옥(一玉)이고 법호는 진묵(震黙, 1562-1633)이다. 만경(萬頃)의 불거촌(佛居村)출신이다. 불거촌은 전북 김제군 만경면 대진리(大津里)이다. 어머니는 조의(調意)이고 태어날때 불거촌의 초목이 3년동안 시들었으므로 사람들은 “세상에 드문 인물이 탄생하였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불거촌에 부처님이 나셨다”고 말을 하였다.
7살이 되던 해에 전주 인근의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에 출가하여 불경을 읽었다. 경전(經典)을 한번 눈에 스치면 다 외워버렸다. 진묵 일옥은 승려 신분임에도 술을 즐겼고, 출가자임에도 모친을 극진하게 봉양하여 효행이 지극하였다. 선사는 전주 봉서사와 송광사, 위봉사, 대원사, 태고사, 목부암, 월명암 등 주석한 도량 곳곳에서 숱한 신이(神異)한 흔적을 남겨 응신불(應身佛), 석가모니불의 소화신(小化身)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이로써 진묵 일옥은 선(禪)과 교(敎)를 아울러 수행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스님이 사미로 있을 무렵, 경남 창원(昌原)의 마산포(馬山浦)를 지나갈 때 어느 여자아이가 사미를 보고 사랑을 느꼈으나 함께 하지 못하자 죽어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대원사(大元寺)에서 스님의 시동(侍童)인 기춘(奇春)이 되었다. 진묵이 기춘을 아끼는 것을 비난하자 국수로 대중공양을 하겠다 한 뒤, 기춘에게 바늘 한개씩을 대중의 발우 속에 넣도록 하였다. 그의 발우 속 바늘은 국수로 변하여 발우를 가득 채웠으나, 다른 승려들의 발우에는 여전히 한 개의 바늘만 있음을 보이며 그것이 애착을 떠난 삼매행이었음을 증명하였다. 진묵이 일출암(日出庵)에 살때 어머니를 왜막촌(倭幕村)에 모셔와 봉양하였는데, 모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산신령을 불러 모기를 남김없이 다른 곳으로 쫒아 버리게 하였다.
변산 월명암(月明庵)에 머물 때, 홀로 『능엄경』을 읽다가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에 들어 문지방에 놓고 있던 손가락이 바람으로 여닫치는 문에 피투성이인 것을 모른 채 경(經)을 읽었다 한다. 또, 밤마다 동쪽에서 불빛이 비치었는데 목부암(木鳧菴)의 등불이었다. 스님은 등불이 비치는 의미를 짐작하고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절이름을 원등암(遠燈庵)으로 바꾸어 부르게 했다. 목부암은 본래 십육나한(十六羅漢)의 도량으로, 나한들이 진묵을 모시기 위해 불빛을 비추었다 한다. 봉서사에는 그를 기리는 부도와 조사전(祖師殿)이 있다. 또한, 초의가 편찬한 『진묵조사유적고』 1권이 전해진다.
진묵의 선(禪)은 언어의 장벽에 걸리지 않고 활달무애한 선기(禪機)를 발휘하였다고 평가한다. 술을 곡차(穀茶)라고 하는 말도 진묵으로부터 유래한 말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선(禪)과 교(敎)를 아울러 수행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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