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 혜근은 사굴산문 출신으로 지공 화상과 평산 처림의 임제 선법을 이은 선사이다.
〈그림1〉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영정(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선사의 법명은 혜근(惠勤, 1320-1376), 법호는 나옹(懶翁)이며 영해부(寧海府) 출신으로 강월헌(江月軒; 堂號)에 살았다. 날 때부터 골상이 남달랐으며 자라서는 근기가 뛰어나고 영특하였다. 20세에 친구의 죽음을 보고 생사에 대한 큰 의문을 해결하고자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 선사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1344년(충혜왕 5) 양주 회암사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곳에 머물던 석옹(石翁) 화상의 법문을 듣고는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고 스승을 찾고자 중국으로 건너갔다. 1348년(충목왕 4) 3월에 원나라 수도 연경(燕京)의 법원사(法源寺)에 가서 지공(指空) 화상을 만나 10년 동안 수학하고 인가를 받았다. 이후 혜근은 여러 지역을 유행하다가 임제종의 평산 처림(平山處林)을 만나 법력(法力)을 인정받고 6개월 동안 함께 지냈다. 평산은 혜근에게 법의(法衣) 한 벌과 불자(拂子) 하나를 신표(信標)로 주었다.
평산이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하니, 혜근은 “대도에서 옵니다.” 하였다. 평산이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물으니, “서천의 지공을 보고 왔습니다.”라고 답하였다. 평산이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는가?” 물으니, “지공은 날마다 천검을 씁니다.”라고 하였다. 평산이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을 가져오라.”고 하자, 혜근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을 후려치니 평산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라고 크게 외쳤다. 혜근은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라고 하였다. 평산은 “하하하” 크게 웃고는 혜근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들어가서 차[茶]를 권했다.
혜근은 평산을 떠나 다시 법원사로 돌아와 지공 화상을 참배하였다. 지공은 혜근을 법제자로 인정하여 법의(法衣)와 불자(拂子), 범서(梵書)를 주며 본국으로 돌아가 삼산양수(三山兩水)를 택해 살면 불법이 절로 흥할 것이라고 하였다.
1358년(공민왕 7) 봄에 귀국한 혜근은 평양, 동해 등을 다니면서 인연 따라 설법하였다. 3년 후 임금의 청으로 신광사(神光寺)에 주석하였는데, 이때 홍건적의 난으로 도적들이 여러 번 절을 찾았으나 선사가 굳은 뜻으로 도량을 지키니 일체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1367년 겨울에 보암(普菴) 장로가 지공 화상이 맡긴 가사와 편지를 가지고 청평사에 와서 혜근에게 전하였다. 1370년 봄에 원나라 사도(司徒) 달예(達睿)가 지공 화상의 영골과 사리를 모셔 와 회암사에 두었다. 혜근은 스승 지공의 유골에 예배하고 광명사에서 안거를 지냈다. 같은 해 9월, 임금이 직접 공부선(功夫選)을 마련하고 선사를 주맹(主盟)으로 삼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고덕과 산문의 승려들이 모두 혜근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땀을 흘렸는데, 환암 혼수(幻庵混修)만이 홀로 삼문(三門) 삼관(三關)에 대해 답하였다.
1371년에 공민왕은 혜근을 ‘왕사대조계종사선교도총섭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보제존자’로 봉(奉)하고 동방 제일 도량 송광사에 주석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선사는 지공 화상이 예언한 삼산양수(三山兩水)가 떠올라 회암사로 옮겨 지공의 탑을 세우고 도량을 중창 불사하였다. 이후 우왕(禑王)의 명으로 밀양 영원사로 가려던 혜근은 병환으로 중간에 여주 신륵사에 머물렀다가 1376년(우왕 2) 5월 15일 진시(辰時)가 되어 고요히 열반하였다. 다비(茶毘)하자 머리뼈 다섯 조각과 치아 40개가 모두 타지 않았으며 수습한 사리가 헤아릴 수 없었다. 사리를 옮겨와 회암사 북쪽 언덕에 탑을 세웠다. 정골 사리 한 조각은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으로 덮었다. 세수는 57세, 법랍은 37년이며 시호는 선각(禪覺)이다. 우왕은 이색(李穡)에게 글을 지으라 명하여 회암사에 비(碑)를 세웠다(1377).
〈그림2〉나옹선사 승탑과 석등(혜운)
혜근은 사굴산문 출신으로 지공 화상과 평산 처림의 임제 선법을 이었다. 또한, 국내의 조계선을 확립한 보조 지눌의 사상도 계승하여 교학과 정토신앙을 함께 수행하고 대중 교화에 힘썼다. 혜근은 스님들에게는 백납가(百衲歌)·고루가(枯髏歌)·영주가(靈珠歌)를 지어 마음 수행에 전념하도록 하였고, 민중에게는 승원가(僧元歌)·서왕가(西往歌)를 한글 가사로 지어 극락왕생하기를 권하였다.
〈그림3〉나옹화상어록 및 나옹화상가송(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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