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 탄연은 고려시대 조계종 사굴산문 중흥에 이바지한 대선사이며 신품사현(神品四賢)의 명필이다.
대감(大鑑) 국사의 법명은 탄연(坦然, 1069-1158), 호는 묵암(默庵)이며 밀양(密陽)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재주와 기질이 뛰어나 8, 9세에 문리를 터득하여 글을 지었다. 13세에 육경(六經)에 통달하였고 15세에 명경생(明經生)에 선발되었다. 당시 숙종은 그가 뛰어난 인재라는 명성을 듣고 세자[훗날 예종]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나 속세에 뜻이 없었던 탄연은 개경 북산의 안적사(安寂寺) 주지를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19세에 태조의 원찰인 광명사에서 혜소(慧炤) 국사 담진(曇眞)에게 법을 인가받고, 연로한 어머니를 염려하여 개경에서 10년간 머물렀다.
『보한집(補閑集)』에 의하면, 탄연의 필적(筆跡)은 섬세하고 교묘하며 꾸밈이 없고 수수한 시격(詩格)의 시문(詩文)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탄연이 지은 「사위의송(四威儀頌)」과 「상당어구(上堂語句)」를 보고 송나라 아육왕산의 광리사(廣利寺) 개심(介諶) 선사는 인가서(印可書)를 보내주었다. 탄연은 개심의 제자 도응(道應), 응수(膺壽), 행밀(行密), 계환(戒環), 자앙(慈仰) 등의 선승(禪僧)과 서신으로 교류하며 송대(宋代) 임제종 황룡파의 선종 불교를 수입하기도 하였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 신라의 김생(金生), 고려의 탄연, 최우(崔瑀), 유신(柳伸)의 글씨를 신품(神品)이라 평하여, 이들 네 사람을 신품사현(神品四賢)이라고 불렀다.
탄연은 1104년(숙종 9)에 승과 대선(大選)에 합격하였다. 예종 때는 대사(大師, 1108), 중대사(重大師), 삼중대사(三重大師, 1114)를 거쳐 선사(禪師, 1120)의 법계를 받았다. 인종 때는 대선사(大禪師, 1131)에서 왕사로 봉해졌다(1146).
탄연이 주석했던 여러 사찰 가운데 단속사(斷俗寺)는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주석하던 곳이다. 후에 스님의 문도들이 이곳에 비(碑)를 세워(1172, 명종 2) ‘고려국조계종굴산하단속사대감국사(高麗國曹溪宗崛山下斷俗寺大鑑國師)’라고 썼다. 이는 단속사가 사굴산문계의 사찰이었으며, 사굴산문이 선종으로서 처음으로 국가 공인의 조계종에 소속된 것임을 보여주는 글귀라고 할 수 있다.
탄연은 1154년(의종 8)에 병세를 보인 후, 1158년 6월 15일에 게송을 읊고는 손을 모으고 입적하였다.
廓落十方界 시방세계가 넓고 넓어도
同爲解脫門 모두가 다 해탈 그 자리
休將生異見 다른 생각 하려는 것 그만두면
坐在夢中魂 꿈결 속의 일들마저 쉬어지리.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장례를 준비시켰으며 시호를 대감(大鑑)이라 하였다. 다비 후 단속사 북쪽 기슭에 영골(靈骨)을 모셨다. 세수는 90세, 법랍은 75년이었다.
〈그림1〉단속사 대감국사비 탁본(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
조계고승전
-
불교로 보는 우리 역사.2, 고려·이조시대 편
-
(서성운 스님이 쓴)부처님의 고뇌와 미소
-
書: 高麗의 釋坦然
-
탄연 청평산문수원기
-
인물로 보는 한국 선사상사: 한 권으로 읽는 한국 선의 역사
-
보한집
-
고려 중기의 大鑑國師坦然과 지리산 斷俗寺
-
강릉 굴산사지(사적 제448호) 가람의 고고학적 성과와 고려 굴산사
-
釋坦然 淸平山文殊院記의 書藝史的 意義
-
고려전기 山門系 고승과 禪宗界
-
고려전기 山門系 고승과 禪宗界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