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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감 묘응(寶鑑妙應)

고려 후기의 대선사이자 왕사로서 가지산문의 종지를 떨쳤다.
혼구(混丘)의 자는 구을(丘乙)이고 호는 무극노인(無極老人)이다. 부모가 복령사(福靈寺)의 관음상에 기도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탑 쌓기 놀이를 좋아하였고 쉴 때는 벽을 바라보고 앉았으며 생각이 바르고 엄격하면서도 공정하여 친척들이 작은 미타라고 하였다. 10세에 무위사 천경(天鏡) 선사를 의지하여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구산(九山) 선과(選科)에서 상상과로 합격하였으나 이를 마다하고 일연을 찾아가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가지산문의 종지를 떨쳤다. 혼구는 『삼국유사』를 교정하고 2편을 보충 설명하여 편집 완성하였다. 어느 날 일연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스스로 오조 법연이라 하더니, 다음날에 혼구가 찾아와 인사하자 일연은 마음으로 기뻐하였다고 한다. 충렬왕은 혼구에게 여러 번 법복(法服)을 내렸으며 대선사(大禪師)로 삼았다. 충선왕은 즉위하여 특별히 선사에게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을 제수(除授)하고 '대사자왕법보장해국일(大獅子王法寶藏海國一)'의 호(號)를 내렸다. 충선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영안궁에 거처할 때(1313) 선사를 맞아들여 여러 번 법담을 나누었다. 이후 혼구를 '오불심종해행원만감지왕사(悟佛心宗解行圓滿鑑智王師)‘로 책봉하였다. 두 임금[충선왕과 충숙왕]이 선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예를 다하여 법을 청한 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라고 한다. 원나라 몽산 덕이가 혼구를 찬탄하여 『무극설』을 지어 배편으로 부쳐오자, 이에 그 뜻을 묵연히 받아들여 스스로 ‘무극노인’이라 불렀다. 몇 해가 지나, 선사는 임금에게 청하여 밀양의 영원사(瑩源寺)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1322년(충숙왕 9) 겨울에 병이 들어 칠곡 송림사(松林寺)로 자리를 옮기고 유서를 써서 봉인하였다. 그해 10월 30일이 되자 목욕하고 대중에게 이별의 게송을 남긴 후, 방장으로 들어가 선상에 기댄 채 입적하였다.
〈그림1〉밀양 영원사지 보감국사 승탑(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荆棘林中下脚 가시나무 숲길 속으로 발을 내디뎌 干戈叢裡藏身 창과 방패 더미 속에 몸을 감추네. 白雲斷處是靑山 하얀 구름 끊어진 곳 바로 청산인데 行人更在靑山外 떠난 사람 다시 청산 밖에 있구나.
왕이 부고를 듣고 매우 애도하고 추모하여 시호를 보감(寶鑑), 탑호를 묘응(妙應)이라 하였다. 세수는 73세, 법랍은 63년이었다. 저술은 『어록(語錄)』 2권, 『가송잡저(歌頌雜著)』 2권, 『신편수륙의문(新編水陸儀文)』 2권, 『중편지송사원(重編指頌事苑)』 30권이 있다.
〈그림2〉밀양 영원사지 보감국사 묘응탑비(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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