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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정조(普覺靜照)

일연은 임제종 계통의 간화선 선승으로 지눌의 법을 이어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대중교화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림1〉일연 선사(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인각사)
보각 정조(普覺靜照, 1206-1286), 일연(一然)의 휘(諱)는 견명(見明)이며 자(字)는 회연(晦然)이었다가 일연(一然)으로 고쳤다. 1206년(희종 2)에 경상도 장산군(지금의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은 나면서부터 몸이 풍만하고 입은 다부지고 눈은 범의 눈처럼 빛나고 위엄이 있었으며 걸음걸이는 소처럼 점잖고도 힘이 있었다고 한다. 9세에 해양(지금의 광주) 무량사에서 글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의 장로 대웅(大雄)에게 의지하여 삭발하고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선종 사찰을 두루 찾아다니며 수행하고 설법하자 날로 명성이 높아졌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추대하여 ‘조계 구산 사선의 으뜸’이 되었다. 22세에 선불장의 시험장에서 상상과(승과의 장원)로 합격한 후, 포산(지금의 현풍 비슬산)의 보당암(寶幢庵)에 머물면서 선관(禪觀)을 닦았다. 1236년 가을에 몽골군이 침입하였다. 일연은 전란을 피하고자 ‘문수오자주(文殊五字呪)’를 염송하며 감응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벽 사이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 “무주(無住)에 머물라”고 하였다. 다음 해 포산 묘문암에 있다가 암자의 북쪽에 ‘무주암’이 있는 것을 알고 그곳에 옮겨 살았다. 여기에서 “중생계는 줄지 않고 불계는 늘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참구하다가 어느 날 환하게 밝아지는 깨달음을 얻었다. 같은 해에 왕명으로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1246년에 선사(禪師)의 승계가 내려졌고, 1259년에는 대선사가 되었다. 일연은 1261년(원종 2)에 서울의 선월사(禪月社)에 주지로 있으면서 당(堂)을 열고 목우자 지눌의 법을 이었다. 1264년 가을에는 남쪽 고향으로 돌아와 오어사에 머물렀으며, 얼마 후 선산 인홍사(仁弘寺)의 만회가 주지 자리를 넘겨주니, 선사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1268년 여름, 일연은 왕의 명으로 주맹(主盟)이 되어 선·교종의 훌륭한 100명의 스님을 모아 운해사에서 ‘대장경 낙성법회’를 주관하였다. 낮에는 경전을 읽고 밤에는 그 뜻을 담론(談論)하니 대중들이 모두 그를 찬탄 공경하며 의지하였다. 선사는 인홍사에 11년 머물렀는데, 절이 오래되어 낡고 비좁아 조정의 도움으로 다시 중건하여 인흥사(仁興寺)라 하였으며 왕이 그 현판을 써서 내려주었다. 용천사(湧泉寺)도 중수하여 불일사(佛日社)라고 하였다.
〈그림2〉일연의 삼국유사(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인각사)
일연은 1277년(충렬왕 3)에 청도 운문사에 주석하였다. 1281년 여름에 원나라가 일본 정벌군을 파견하자, 임금이 이를 돕게 되어 경주로 내려왔다. 선사는 행재소(行在所)에 와서 법좌에 올랐다. 왕은 선사를 더욱 공경하여 그가 지은 불일결사문(佛日結社文)을 가져다 시를 지었다. 1283년 봄에는 왕이 선사를 세 번 청하여 ‘원경충조국존(圓經冲照國尊)’으로 책봉하고, 그해 4월에는 임금이 직접 백관들을 거느리고 스승의 예를 다하여 대궐로 모셨다. 그러나 일연은 오래되지 않아 연로한 어머니를 이유로 왕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여 용문사로 내려왔다. 다음 해 모친은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해 조정에서 인각사(麟角寺)를 수리하여 선사에게 머물도록 하였다. 일연은 이곳에서 구산문도회를 두 번 열었는데 총림의 성대한 모습이 대단하였다.
〈그림3〉보각국사 일연선사 정조지탑(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인각사)
일연은 1289년(충렬왕 15) 6월에 병을 얻고 7월에 임금께 직접 글을 써서 멀리 떠남을 알렸다. 그날 밤 큰 별이 절 뒤로 떨어졌다. 다음 날 대중과 마지막 문답을 주고받으며 주장자를 세 번 내려치고는 손으로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다비한 영골을 수습하여 인각사 동쪽 언덕에 탑을 세웠다. 임금이 듣고 슬퍼하며 시호를 보각(普覺), 탑호를 정조(靜照)라 하였다. 세수 84세, 법랍은 71세이다.
〈그림4〉보각국사 비명(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인각사)
인각사(麟角寺)의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에 의하면, 일연은 임제종 계통의 간화선 선승이지만, 종동선과 운문선 등의 다른 선사상도 폭넓게 수용하였다. 또한 신앙적으로 보면 관음의 공덕과 다라니 신앙을 비롯한 신비적인 요소까지 보여주었으며, 지눌의 법을 이어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대중교화의 실천을 강조하였으니 돈오점수의 선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듯 일연은 선(禪) 수행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교학을 두루 이해하였으며 대중교화를 몸소 실천하였다. 저술은 100여 권 정도로 알려졌으나, 현존하는 자료는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 2권뿐이다. 〈일연의 연보(年譜)〉 출처: 도명섭(2022), 「우리가 몰랐던 일연과 『삼국유사』」, 『세계환단학회지』9, 세계환단학회, 60-63쪽 참고.
  • 1206년(고려 희종2년) 출생.
  • 1214년(9세) 해양(海陽) 무량사(無量寺)에 가서 학문을 닦음.
  • 1219년(14세) 진전(陳田) 장로(長老) 대웅(大雄)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음.
  • 1227년(22세)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불장(選佛場)에 나아가 선종의 상상과(上上科)에 합격.
  • 그 후 포산[苞山: 대구~달성~청도 비슬산]의 보당암(寶幢庵)에 머무르며 참선을 함.
  • 1236년(31세) 몽고의 침입이 남쪽까지 닥치자 난리를 피할 다른 곳이 감응되기를 기도하니, 문수보살이 현신現身 계시함에, 이듬해 보당암의 북쪽 무주암(無住庵)으로 거처를 옮겼다.
  • 거기서 늘 ‘생계불감(生界不減) 불계부증(佛界不增)[생계(生界, 세속적 삶)는 줄지 않고 불계(佛界, 도법의 경지)는 늘지 않는다]’의 구절을 참구(參究)하다가 “오늘 삼계(三界)가 꿈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가 작은 털끝만큼의 막힘도 없음을 보았다.”라며 깨달음을 얻었다.
  • 1237년(32세) 국가로부터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승계를 받았다.
  • 1246년(41세) 선사(禪師)의 승계(僧階)를 받았다.
  • 1249년(44세) 정안(鄭晏)의 초빙으로 남해에서 정림사(定林社)를 주관하면서, 팔만대장경 간행의 총람을 하다.
  • 1259년(54세) 대선사(大禪師)로 승급되었다.
  • 1261년(56세) 임금의 조서를 받고 서울[강화도;몽고 피난 수도(首都)]로 올라가 선월사(禪月社)에 주석하면서, 목우화상[보조국사 지눌(知訥)]의 법맥을 멀리 이어받은 것[요사(遙嗣)]을 자처하였다.(일연 5세 때인 1210년에 지눌은 입적하였음.)
  • 1264년(59세) 포항 운제산(雲梯山)의 오어사(吾魚寺)에 우거, 얼마 안 있어 인홍사(仁弘社)의 주지 만회(萬恢)가 주석(主席)의 자리를 넘겨주었는데, 배우려는 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 1268년(63세) 왕명으로 조정에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개경에 초청하여 운해사(雲海寺)에서 대장낙성회(大藏落成會)를 베풀었는데, 일연으로 하여금 그 법회를 주관하게 하였다.
  • 1275년(70세) 인홍사(仁弘社)에서 제액(題額)을 하사받아 인흥사(仁興社)로 고쳐 불렀다. 이 기간에 용천사(湧泉寺)를 불일사(佛日社)로 삼았다.
  • 1277년(72세. 충렬왕3)부터 1281년까지 운문사(雲門寺)에서 살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 1281년(76세) 동정군(東征軍, 여·몽 연합 일본원정군)을 격려하러 온 임금(충렬왕)이 행재소(경주)에서, 스님이 쓴 ‘불일결사문’에 제압(題押)하고는 (임금 본인도) 결사의 일원이 되었다.
  • 1282년(77세) 대전(大殿)에 들어가 선(禪)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서 왕실 상하의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겨울 12월에는 (충렬왕이) 수레를 타고 친히 스님을 방문(訪問)하여 법문을 들었다.
  • 1283년(78세) 3월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徑冲照)라는 호를 받았다.
  • 늙은 어머니(당시 95세)가 마음에 걸려,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구산(舊山)(?)(고향)으로 돌아왔다.
  • 이듬해(1284년. 79세) 모시고 봉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칙명(勅命)을 내려 화산의 인각사(麟角寺)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頃)을 주어 스님의 하안소(下安所)로 삼아 주석하게 하였다.
  • 1284-1289(5년간) : 스님이 인각사에 들어가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 번 여니, 총림(叢林)의 성(盛)함이 근고(近古)에 일찍이 있어 보지 못했다.
  • 1289년(84세) 6월에 병이 들자 7월 7일 왕에게 올릴 글을 쓰고, 8일 새벽 선상(禪床)에 앉아 제자들과 선문답(禪問答)을 나눈 뒤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가서 입적하였다.
  • 이 때 곧기가 깃대 같은 다섯 빛줄기 광명이 방장(方丈) 뒤에서 일어나는데 그 끝이 타오르는 불꽃같이 빛났다. 일산(日傘) 같은 흰구름이 그 위에서 하늘을 향해 사라져 갔다.
  • 제(制;왕명)를 발하여 시호(諡號)를 보각(普覺)이라 하고 탑호(塔號)를 정조(靜照)라 하였다.
  • 스님의 탑을 인각사에서 동남쪽으로 4-5리 떨어진 둥둥마을(둥디이) 뒷산기슭에 세웠다.
  • 문인(門人) 운문사 주지 청오 진정 대선사 청분(淸玢)이 스님의 행장(行狀)을 엮어 임금께 진문(秦聞)하였다.
  • 칙령(勅令)으로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비(碑)를 만들어 세우도록 하였다.
  • 1295년(입적 후6년) 8월 ; 인각사 극락전 앞에 문인 내원당 겸 인각사 주지 청분(淸玢)이 비석을 세웠다.
  • 저서로는 『어록(語錄)』 2권, 『게송잡저(偈頌雜著)』 3권이 있고, 편수(編修)한 바로는 『중편조동오위(重編曺洞五位)』 2권, 『조파도(祖派圖)』 2권,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3권, 『제승법수(諸乘法數)』 7권, 『조정사원(祖庭事菀)』 30권,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 등 100여 권이 세상에 유행하고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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