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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

진귀조사설은 석가모니가 불법을 깨닫고 나서도 궁극이 아님을 알고, 히말라야에 있는 진귀조사를 방문해 현극의 종지인 선(禪)을 전해 받았다는 내용으로, 교(敎)는 석가에게서 나왔지만, 선(禪)은 진귀조사로부터 전해졌다는 주장이다.
진귀조사설은 고려 진정 천책(眞靜天𩑠, 1206-?)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 최초로 나타나며, 조선시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선교석(禪敎釋)』에도 기록되어 있다. 『선문보장록』에는 진귀조사설이 세 번 인용되어 있다. 먼저 『달마밀록(達摩密錄)』에서는, 진귀조사가 설산에서 석가를 기다리고 있다가 심인(心印)을 전해주어서 마침내 석가가 조사의 종지를 얻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림1〉영은사범일국사진영 (靈隱寺梵日國師眞影)(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다음으로 『해동칠대록』에서는, 사굴산문(闍堀山門)의 조사 범일(梵日, 810-889)이 선과 교에 관한 신라 진성대왕(眞聖大王)의 질문에 진귀조사설로 대답했다고 한다. 즉, 석가는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유아독존이라 말한 뒤에 성문을 넘어 출가했다. 석가는 설산에서 별을 보고 도를 얻었으나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고 수십 개월 유행하다가 진귀조사를 만나 비로소 심오한 이치를 깨쳤다. 이를 두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달마밀록』이나 『해동칠대록』은 모두 전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선문보장록』 군신숭신문(君臣崇信門)의 「위명제소문제경편」에는 진귀조사라는 구체적인 이름은 없지만, 석가가 왕자로 태어나 자라서 19세에 출가하였으나 조사의 종지에 계합하지 않아서 12년 세월 유행하다가 설산의 조사원에서 심인을 전해 받고 성도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선문보장록』의 진귀조사설은 허구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선교 대립의 시대에 교(敎)에 대하여 선(禪)의 우위를 주장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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