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엄은 고려 초기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수미산문의 개창자이다.
이엄(利嚴, 870-936)은 고려 초기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수미산문의 개창자이다. 충남 서산 태안에서 태어난(870) 이엄은 12세에 가야갑사(迦耶岬寺)에 들어가 덕량(德良) 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였다. 17세에 도견(道堅)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이후 여러 지역을 유행(遊行)하며 정진하였다.
구법(求法)을 결심한 이엄은 896년(진성왕 10)에 중국 절강성으로 가는 사신 최예희(崔藝熙)를 따라 당나라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조동종의 법맥을 이은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에게 인가받고, 911년(신라 효공왕 15)에 고국으로 돌아와 호족 소율희(蘇律熙)의 후원을 받으며 김해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후삼국의 쟁패전이 격화되면서 김해를 떠나 북으로 상주, 영동 등으로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태조 왕건의 부름을 받게 되어 자신의 선사상을 펼치고자 고려에 들어갔다.
태조 왕건은 칙명을 내려 이엄을 왕사로 삼았고, 태흥사와 사나내원(舍那內院)을 거쳐 해주의 수미산에 광조사(廣照寺)를 지어 주석케 하였다. 이엄은 광조사에서 법석을 열어 드넓게 교화를 펼치다가, 936년(태조 19)에 오룡산사(五龍山寺)에서 앉은 채로 입멸하였다. 광조사는 후에 수미산문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시호는 진철(眞澈) 대사라 하였으며, 문하에 처광(處光), 도인(道忍), 정능(貞能), 경숭(慶崇) 등 수백 명의 선사가 배출되어 이엄의 종풍을 드날렸다. 이로부터 법제자와 법손이 점점 흥성하여 마침내 선문의 한 파(派)를 이루게 되었다.
〈수미산문의 법맥도〉
- 석두 희천(石頭希遷, 700-790) →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 → 수미 이엄(須彌利嚴, 870-936) → 처광(處光, 생몰미상)
수미산문은 고려시대 나름의 독자적인 선풍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문이다. 이엄, 경유, 여엄, 형미는 해동의 사무외대사라 불리며 고려에 조동종의 선풍을 전승한 대표적인 선사들이다. 이 가운데 이엄은 용의주도하고 주도면밀한 조동의 가풍으로 나말여초의 혼란한 현실 생활에서도 심법(心法)의 본성을 깨칠 수 있도록 강한 긍정의 사상으로 승화시켜주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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