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선승으로 구산선문 중 사굴산파의 개조이다.
범일(梵日, 815-894)은 신라시대 승려로 통효(通曉)대사라고도 하며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闍崛山派)를 세웠다. 15세 출가하여 수행하다가 덕흥왕(興德王) 6년(831) 입당(入唐)하여 염관(鹽官) 제안(齊安)으로부터 “평상심이 도(平常心昰道)”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회창(會昌) 법난이 일어나 고초를 겪다가 문성왕(文聖王) 9년(847) 신라로 돌아왔다. 귀국 후 강릉에 굴산사를 세우고 40여 년 동안 머물면서 수행과 전법에 힘쓰다 진성왕(眞聖王) 8년(894) 80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삼국유사』에는 범일의 행적을 기술하면서 당에서 귀국한 후 굴산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 외에도 『조당집』과 지증 도헌(智證道憲) 탑비문 등의 금석문, 월정사(月精寺) 등 사찰의 옛 기록에도 범일 관련 기록이 전해진다. 범일은 굴산사 외에도 동해에서 삼화사(三和寺)를 세우고 양양의 낙산사(洛山寺)를 중건했으며 강릉 신복사(神福寺)도 건립했다. 범일은 석가모니가 진귀조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진귀조사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사굴산파 문하에 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개청(開淸), 행적(行寂) 등의 뛰어난 제자가 나와 일파를 이루었다.
〈그림1〉범일국사 진영(문화재청)
굴산사는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학산리 사굴산에 있었던 사찰로 847년에 범일이 창건하였다. 창건한 이래 이 절은 선문구산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본산으로 발전하였다. 전성기에는 승려 수가 200여명 이상이었다고 전해지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36년 홍수로 6개의 주춧돌이 노출되었고, 이때 ‘사굴산사’라는 글씨가 발견된 이후 굴산사 터임이 밝혀졌다.
〈그림2〉굴산사지 당간지주(문화재청)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기사
-
가지산문(迦智山門)과 도의(道義)신라 말에 형성된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도의(道義)의 선법을 이어받은 체징(體澄)이 전라남도 장흥에 보림사를 창건하여 일으킨 산문이다. -
실상산문(迦智山門)과 홍척(洪陟)신라 말에 형성된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홍척이 당에 가서 전해 받은 선법을 지리산에 실상사를 창건하여 형성한 산문이다. -
동리산문(桐裡山門)과 혜철(惠哲)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서당 지장(西堂智藏, 735-814)의 선법을 이어받은 혜철이 전남 곡성의 동리산에 태안사를 창건하여 일으킨 산문이다. -
봉림산문(鳳林山門)과 현욱(玄昱)신라 말에 형성된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현욱(玄昱)의 제자인 심희(審希)가 창원 봉림산에 봉림사를 창건하여 형성한 산문이다. -
성주산문(聖住山門)과 무염(無染)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형성된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무염(無染)이 충남 보령 성주사에서 창건한 산문이다. -
사자산문(獅子山門)과 도윤(道允)신라 말에 형성된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도윤(道允)이 당에 건너가 전해 받은 선법을 제자인 절중(切中)이 강원도 영월의 사자산 흥령사에 머물면서 형성한 산문이다.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
조당집(祖堂集)고서 상세정보
-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더보기 +
-
신라시대의 불교사상
-
한국 선사상 연구
-
신라선종의 연구
-
한국불교사
-
屈山寺址 浮屠 學術調査報告書
-
역주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1권
-
羅末麗初 禪宗山門 開創 硏究
-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
한국불교사상에서 본 범일의 위치와 굴산사의 역사성 검토
-
신라하대 굴산문의 형성과 그 사상
-
나말여초 사굴산문의 정치세력과 동향
-
屈山寺 關聯 新種資料 紹介와 硏究課題의 設定
-
通曉 梵日(810∼889)의 生涯에 대한 再檢討
-
梵日(810∼889)의 선사상
-
弓裔와 闍崛山門
-
신라 하대 선종사 연구동향
-
崛山寺址 梵日의 浮屠 名에 대한 검토
-
崛山門 梵日國師 관련 자료의 검토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