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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산문(聖住山門)과 무염(無染)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형성된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무염(無染)이 충남 보령 성주사에서 창건한 산문이다.
〈그림1〉창원 성주사 무염국사 진영 (昌原 聖住寺 無染國師 眞影)(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무염은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이다. 무염은 당으로 가서 마조 도일(馬祖導一)의 제자인 마곡 보철(麻谷寶徹)을 찾아가 법을 구한 후 845년에 신라로 돌아왔다. 폐허나 다름없던 오합사(烏合寺)라는 사찰에 무염이 주석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수행자들이 몰리기 시작하였는데 ‘무염선사탑비’에는 2000여명의 수행자들이 무염의 법을 구하려고 정진을 이어갔으며 이는 당대 최고의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무염은 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선사상의 위상을 강조하였다. 선과 교를 비교하면서 선이 교보다 최상승임을 구체화 한 무설토론은 이심전심의 경지로 『선문보장록』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무염은 선과 교의 대립을 근본으로 되돌려 실천적인 차원에서 수용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선과 교 모두를 활용한 무염의 선사상은 언어와 말이 있는 현상세계를 유설토(有舌土)라고 하여 방편으로 활용하였고, 선은 무설토(無舌土)라고 하여 말로는 통하지 않는 언어도단의 경지이며, 이심전심, 무상무위무전(無相無爲無傳)의 단계임을 주장하였다. 무상무위무전이란 상이 없고 함이 없고 따로 전할 바 없는 진리, 깨끗함이나 더러움, 옳고 그름 등의 상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선의 핵심 사상이다. 이는 말 즉 교설에 의존 하지 않는 무염의 선사상을 대표한다. 무염은 창원에도 성주사라는 절을 창건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그 터만 남아있으며, 충남 보령의 성주사에는 ‘성주사지 삼층석탑’ 및 ‘낭혜화상탑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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