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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제일선원

수행기관 명칭승가사 제일선원
수행기관 전화02-379-2996
수행기관 주소서울 종로구 비봉4길 213
수행기관 구분비구니선원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인 승가사 내에 개원한 비구니선원이다.
〈그림 1〉승가사 제일선원(월간해인, 김선주)
승가사(僧伽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756년(경덕왕 15)에 수태(秀台)가 창건하였다. 승가사라는 절 이름은 당나라 고종(高宗)때 장안(長安) 천복사(天福寺)에서 생불이라고 불린 서역 출신의 승가 대사(僧伽 大師: 627~708)를 사모한 뜻에서 유래되었다. 그 뒤 고려시대 1024년(현종 15)에는 지광(智光)과 성언(成彦)이 중창하였고, 1090년(선종 7)에는 구산사(龜山寺) 주지였던 영현(領賢)이 중수하였으며, 1099년(숙종 4)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왕과 왕비를 모시고 참배하면서 불상을 개금(改金)하고 불당을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422년(세종 4)에 세종이 전국의 사찰을 통합하여 선교양종으로 나눌 때 조계종을 선종에 배속시켰다. 승가사는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중수를 거쳤으며, 고종 때에는 명성황후(明成皇后) 엄상궁(嚴尙宮)의 후원으로 중건되기도 하였다. 근대에는 비구니 도공(道空)이 다시 중수하였고, 비구니 도원(道圓)이 도량을 가꾸어나갔으나, 6·25동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1957년 비구니 도명(道明)이 산신각·향로각·동정각·범종각·대방·요사 등의 불사를 이루었다. 1935년에 승가사에 선원(禪院)이 들어섰다. 당시 만공(滿空)을 조실로 모시고 입승 홍응규(洪應奎)를 비롯하여 11명의 납자가 수선안거하기 시작했는데 6·25동란 때까지 선원이 운영되었다. 비구니 선맥을 연 법희(法喜)도 이곳에서 조실로 지내면서 납자들을 제접하였고, 1960년대 후반에 들어 몇 분의 비구니들이 모여 정진하면서 선원으로서의 모습을 다시 갖추었다. 1971년 상륜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선원이 재개되었다. 1972년 하안거부터 춘성(春城)을 조실로 모시고 선원 정진납자 60여 명을 받아들였다. 이후 벽초(碧超)·원담(圓潭)·숭산(山) 등을 조실로 모시고 정진해 왔으며, 대웅전 동쪽편에 대중정진도량 적묵당이 세워지면서 선원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승가사 선원은 1988년 동안거에 들어 승가사제일선원(僧伽寺第一禪)으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승가사 제일선원은 해제, 결제 없이 정진대중을 맞아들이고 있는데, 오히려 산철이 결제철보다 수선 대중이 많은 편이다. 선원의 일과는 새벽 3시 죽비예불로부터 시작하여, 4차례의 입선과 방선을 반복하여 수행한다. 절의 소임을 맡은 청산과 백운의 선객들이 함께 동참하는데, 보통 15여명의 선객들은 하루 11시간 이상 화두를 참구하며 용맹정진한다. 선원의 구성은 용상방에 따라 입승이 선방을 통솔하고, 명등 정통 다각이 각각의 소임에 따라 선원을 유지하며, 원주가 절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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