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보덕사 가야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41-337-4350 |
| 수행기관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로 400-74,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277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니선원 |
보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흥선대원군이 창건하였으며 수덕사 고승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비구니 수행 도량이다.
보덕사(報德寺)는 예산군 옥양봉 남쪽 기슭에 있던 가야사(伽倻寺)를 승계하여 1871년(고종 8)에 창건하였다. 가야사에는 금탑(金塔)이라 불리는 철첨석탑(鐵尖石塔)이 있었는데 그 탑의 사면에는 각각 석감 안에 석불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절터가 왕손을 낳게 한다는 풍수설로 인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1840년(헌종 6)에 가야사를 불사르고 그 자리에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의 묘를 이장했다. 그 뒤 아들 고종이 보위에 오르자 그 은덕(恩德)에 보답하고자 현 위치에 절을 짓고 보덕사(報德寺)라 하였다.
〈그림 1〉보덕사 극락전(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덕사 선원은 수덕사와 지리상 가까운 관계로 보월(寶月), 혜월(慧月), 만공(滿空)을 비롯한 수덕사 고승들의 정진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1923년 금오(金烏)는 이곳에 머물고 있던 만공의 수제자인 보월 성인(寶月聖仁)을 찾아와 깨우침을 얻고 인가받았다. 1951년에 수옥(守玉)이 이곳에 주석하면서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변모하였으며, 만공이 전법한 비구니계 큰 별인 묘리당 법희가 이곳에 자주 머물기도 하였다. 방함록에 의하면 보덕사 선원이 대중 선방으로 정식 개방된 것은 종현(宗顯)이 주지로 있었던 1987년 동안거부터이다. 이후 자광(慈光), 대웅(大雄) 등이 주지를 맡아 대중을 외호하면서 함께 수선 안거하였다. 보덕사 선원은 2004년 동안거 때 문수선원으로 개칭하였다가 2008년 동안거부터 다시 가야선원이라고 하였다. 안거 대중은 8명에서 25명 내외가 정진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대웅(大雄)이 선원장으로서 대중을 살피고 있다.
〈그림 2〉보덕사(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과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현대식으로 지은 2층의 강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한다. 극락전 앞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인 석등이 있고, 절 옆에는 관음암과 비구니 묘리 법희 선사의 탑과 비가 있다(1979).
탑비에는 만공선사가 법희에게 전한 전법게문이 새겨져 있다.
〈묘리 비구니 법희 妙理比丘尼法喜〉
일만 가지 형상의 적멸함이 석가불의 참모습이고
적멸함도 적멸하여 다한 곳이 진귀 조사 면목이로다.
부처와 조사가 변화하고 바뀌어 이삼천 년 지나도
묘한 이치 참된 광명은 오래도록 어둡지 않도다.
〈세존응화 2943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정혜사 금선대 법사 만공〉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기사
-
덕숭총림선원수덕사(修德寺) 덕숭총림(德崇叢林)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며, 우리나라 불교계 8대 총림의 하나이다. -
만공 월면(滿空月面)경허스님의 법제자로 일제강점기 선학원 설립운동과 선우공제회운동에 참여한 승려이다. -
혜월 혜명(慧月慧明)조선 말기 경허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로 대구와 부산에서 선풍을 펼친 승려이다. -
묘리 법희(1887~1975)묘리 법희(妙理法喜) 스님은 한국불교사에서 최초로 비구니 선풍(禪風)을 진작시킨 스님이다. 법명은 법희(法喜), 법호는 묘리(妙理), 속명은 유손순(兪巽順)이다. 1887년 2월 9일 충남 공주군 탄천면 신기리에서 아버지 유창주의 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4세 때 외할머니 등에 업혀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미타암으로 찾아가 있다가 14세 때 귀완(貴完, 생몰년 미상) 비구니를 은사(恩師)로 출가하였다. 23세 때인 1910년 합천 해인사에서 비구니계를 받은 후 동학사 만우 상경(萬愚尙經, 생몰년 미상) 강... -
화산 수옥(1902~1966)화산 수옥(華山守玉) 스님은 덕숭산 수덕사 견성암(見性菴)의 비구니이다. 〈양산 내원사 비구니 화산당 수옥 화상 비문(梁山內院寺比丘尼華山堂守玉和尙碑文)〉에 따르면, 호는 화산(華山), 속성은 정(鄭)씨, 본관은 동래(東萊), 아버지 정태익과 어머니 충주 이씨 사이에서 1902년 11월 12일 경남 진해시 자은동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인간의 구속, 특히 여성으로서의 부자유함을 많이 느껴 고상하고 걸림 없는 삶을 희구하였다. 그러던 중 나염암(念菴羅洪先, 1504~1564)의 시 구절을 보고 ...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
선원총람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