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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원각선원

수행기관 명칭 태안사 원각선원
수행기관 전화 061-362-2583
수행기관 주소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215
수행기관 구분 비구선원
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에 속한 태안사의 선원이다.
태안사(泰安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로서 곡성군 동리산(桐裡山)에 자리잡고 있다. 태안사는 적인 혜철(寂忍惠哲, 785~861)이 신라 문성왕 9년(847)에 개창하였다. 혜철은 중국 남종선 마조(馬祖)의 법제자인 서당 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이었으며 신라 구산선문 중 동리산파(桐裡山派)의 중심 도량이다. 고려 태조 때 광자 윤다(廣慈允多)가 법을 이어받았으나 고려 초 천태종의 성립과 함께 사세가 위축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배불숭유정책에 밀려 더욱 쇠퇴했지만 1683년 퇴락한 당우를 세워 중창에 힘을 쓰기도 했다. 6·25 이후 많은 당우를 잃었지만 1985년 이후 청화(淸華)가 주석하면서 사세를 확장하였다. 태안사의 중요문화재로는 혜철선사의 부도인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윤다의 부도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 광자대사비(보물 제275호), 승무 출 때 사용하는 대바라(보물 제956호), 동종(보물 1349호), 일주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70호) 등이 있다.
〈그림 1〉태안사(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신라 말 고려 초 동리산문의 선맥인 태안사에 근대 선원이 개원된 해는 1900년 초 이다. 당시 경허가 태안사에 와서 선원을 창설하였고, 1921년에는 전강(田岡)이 여기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오도송을 읊었다. 이후에도 태안사에 선원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6·25 전까지 선방에서 수행자들의 참선이 이어졌다. 6·25 이후 폐원된 선원은 1972년 범룡(梵龍)이 태안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다시 문을 열어 수선 대중이 정진하기 시작하여 1975년까지 운영되었다. 이후 범룡이 태안사를 떠나면서 선원도 폐원되었다. 1985년 동안거 때 청화(淸華)가 금강선원(金剛禪院)을 다시 개원하였다. 금강선원은 원각선원이라도 한다. 당시 선원 큰방인 상선원에서 21명의 수행자들이 3년간 묵언정진을 시작하였고 염화실에서는 5명의 수행자가 장좌불와하면서 정진하였다. 선방 대중들이 묵언정진하자 외호대중도 소리를 낼 수 없어 태안사 도량에는 고요만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3년결사를 시작했을 때 조실은 서옹(西翁), 선덕은 금산(金山)이었으며 청화가 선원장을 맡았다. 태안사 금강선원에는 상선원, 하선원, 염화실, 가은암과 같은 수행처가 있다. 상선원은 60평 규모의 수용인원 15명으로 12시간 정진할 수 있다. 하선원은 40평 규모로 9명이 정진할 수 있으며 정진시간은 10시간이다. 염화실은 30평 규모로 구참 수행자 5명이 10시간 정진할 수 있다. 산내 암자인 가은암은 20평 규모로 4명의 수행자가 항시 15시간 가행정진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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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찰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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