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직지사 천불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54-429-1700 |
| 수행기관 주소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천불선원은 직지사 내의 극락전에 개원한 비구 선원으로, 기초선원에 다니는 승려는 참가가 어렵다.
〈그림 1〉천불선원전경(직지사)
직지사(直指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의 본사로 황악산(黃嶽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황악산의 ‘황’은 중앙을 상징하는 글자로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경계가 소백산맥의 봉우리 하나로 모이기에 그렇게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였으며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慈藏)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경순왕 4년(930)에 천묵(天黙)이 중수하였으며, 능여(能如)가 태조의 도움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 등곡 학조(燈谷學祖)가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때 천불전, 천왕문, 자하문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된 후 1602년부터 70여 년간의 중건불사를 통해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였다. 1805년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다가 한국전쟁 및 정화 운동에 의해 퇴락하였다. 1958년에 녹원(綠園)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1966년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통해 사세를 확장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 직지사에는 대웅전 외에도 천불전과 극락전을 비롯한 65동의 전각이 들어서 있다.
성주산문의 선승인 무염의 제자 능여(能如)는 직지사를 중창하면서 숭유억불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많은 선지식들을 배출하는데 힘썼다. 벽계 정심(碧溪淨心) 및 등곡 학조, 사명 유정(泗溟惟政) 등이 직지사에서 선지(禪旨)를 펼쳤다.
직지사 천불선원의 역사는 선종 고찰에 선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근대에 들어 시작되었다. 1910년 직지사 염불회가 수선사(修禪社)로 개명하면서 천불전 옆의 천불암을 고쳐 선원을 창설하였다. 1913년 봄에 선원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는데 당시 참선 수행자는 3명이였다. 제산 정원(霽山淨圓) 및 퇴운 원일(退雲圓日), 탄옹 정혜(炭翁正慧) 등의 수행처로 이름을 날렸으며, 1915년 경봉(鏡峰)이 해인사 퇴설당 선원에서 직지사 천불선원으로 옮겨와 남전(南泉)의 지도를 받으며 선 수행을 하였다. 1918년에 전강(田岡)은 천불선원으로 와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으며, 이 외에도 고암(古庵), 동산(東山), 금오(金烏) 등의 수행승들이 참선정진 하였다. 근래에는 안거마다 10~30여명의 수행자들이 정진하였다고 한다. 현재 천불선원은 비구선원으로 기초선원에 다니는 스님은 참여가 어려우며, 2022년 현재 선원장은 의성 대진스님이다. 천불선원은 정면으로 극락전, 좌측으로는 향경다실(香經茶室), 우측으로는 동상당이 있으며 향경다실 뒤에 서산당이 있다. 극락전을 개보수하여 선원 큰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총 59.64평이다. 약 20여명이 수행 정진할 수 있는 규모이다.
직지사 내에는 괘불도, 대웅전 수미단, 대웅전 삼존불탱화, 삼존불탱화, 석조약사여래좌상 등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직지사 석조나한좌상이 시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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