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용주사 중앙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31-234-0040 |
| 수행기관 주소 | 경기 화성시 용주로 136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화성 용주사 내에 전강이 개원한 선원으로 선사가 남긴 육성테이프를 들으며 조사선풍 및 화두 참구를 이어가고 있는 비구 선원이다.
〈그림 1〉용주사 중앙선원(월간 해인, 김선주)
용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2교구 본사이다.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가지산문의 2대조였던 염거(廉巨)가 갈양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정확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의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현릉원에 세자의 명복을 빌어주는 능사(陵寺)로 다시 세웠다. 낙성식 전날 밤 정조의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하여 용주사라고 이름 지었다 전해지며, 정조의 효심과 불심이 승화된 효찰대본산으로 불리고 있다. 건립과 동시에 전국 오규정소(五糾正所)가 되어 승풍을 규정하였으며,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하였다. 오규정소란 나라에서 임명한 관리들이 머물면서 왕실의 안녕을 비는 동시에 관할 사찰을 관리하는 곳으로 1790년(정조14)에 용주사를 비롯하여 봉은사, 봉선사, 백련사 흥국사의 다섯 곳이 있었다.
용주사 중앙선원은 청담(靑潭), 월산(月山) 등을 비롯한 교계 원로 중진들이 수도권 내에 선원을 세울 것을 발의하여 개원되었으며, 1969년 11월 29일에 전강(田岡)이 동안거 결재와 동시에 개원식을 거행하였다. 중앙선원은 누각형식의 천보루 및 선당(禪堂)으로 사용되었던 서측 만수리실과 요사(寮舍)로 쓰였던 동측 나유타료가 좌우로 7칸씩의 회랑과 맞닿아 연결된 구조이다. 현재의 중앙선원은 1986년 당시 주지인 정대(正大)가 많은 참배객에 비해 협소하였던 선방을 지금의 위치에 단독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선원은 대략 66평방미터에 20평 정도의 홍각이 딸린 5칸의 건물이며 약 15~2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중앙선원은 전강이 개원한 이래 송담(松潭)이 그의 법을 이어받아 선수행을 지도 하였는데 현재에도 전강이 남긴 육성테이프를 들으며 정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꾸준하고 여일하게 화두 정진하라는 전강의 유훈에 따라 별도의 용맹정진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
용주사에는 국보인 용주사 범종과 보물인 용주사 대웅보전이 있으며, 시도유형문화재로는 용주사 대웅전후불탱화, 용주사 상량문, 용주사 목조감실 등이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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