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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 수도선원

수행기관 명칭수도암 수도선원
수행기관 전화054-437-0700
수행기관 주소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수행기관 구분비구선원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인 수도암에 있는 비구선원이다.
〈그림 1〉수도암 수도선원(불교신문, 어현경)
수도암(修道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로 불영산(佛瑩山) 정상 부근에 있다.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道詵) 국사가 절을 창건하였고, 조선 인조 27년(1649) 벽암 각성(碧巖覺性)이 중창했으며, 동학혁명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 된 것을 광무 3년(1649) 포응이 절을 다시 중창하였다. 1950년 6‧25 사변 때 절이 화마로 절의 일부 누각이 소진되었으며, 1960년에는 대적광전, 약사전, 정각암(正覺庵), 요사채 4동만 있어 3~4명 수행자들이 수도하고 있었다. 1969년 현 해인사 방장인 법전(法典)이 와서 크게 중수하여 대적광전, 약광전, 수도선원, 관음전, 나한전, 노전, 정각(正覺), 서전(西殿), 낙가전(洛伽殿) 등 20동이 넘는 큰 가람이 되었다. 근대에는 경허(鏡虛)는 1899년 봄부터 해인사에 머물다가 수도암을 찾았고 직접 쓴 ‘수도암(修道庵)’이라는 친필 현판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허(鏡虛)는 51세에 26세의 방한을 수도암에서 만났다. 경허는 설한 『금강경(金剛經)』 사구게로 인하여 한암은 깨달음을 얻었다. 1924년 고암(古庵), 전강(田岡), 월송(月松) 등이 정각에서 법화문답(法話問答)을 하면서 동안거를 지냈으며, 1936년 전강(田岡)이 수도암 선원 조실로 머물렀다. 1943년에는 조계총림 초대 방장을 지냈던 구산(九山)이 수도암 정각에서 ‘무자화두’를 들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 수도하기 좋은 도량을 찾다가 이 암자를 발견하여 머무르게 되었는데 당시 7~8명의 스님이 참선 수행중이었다. 1943년 4월 15일 수도암에 고등선원(高等禪院)이 개설되었다. 해인사 백렴암에서 순호(淳浩), 수련(秀蓮), 혜천(慧天) 등이 대중 30명과 함께 수도암으로 와 고등선원을 개원한 것이다. 1969년 해인사에 주석하던 법전이 수도선원 선원장을 맡으면서 선승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중창 불사를 거행하여 나한전, 관음전, 조사전 등과 함께 선원 건물을 중축하였다. 1974년 동안거 때 법전은 수도선원을 다시 개원했으며 1995년 10월에 수도선원 낙성식을 올렸다. 수도선원을 거쳐간 선지식으로는 경허, 한암, 전강, 효봉, 구산, 법전, 경산, 관응, 석주, 고송 등이 있다. 수도선원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수용인원은 24명이다. 1999년 하안거에는 법전을 조실로 모시고 선덕 적명(寂明), 입승 관성(觀性), 청중 현덕(玄德)을 비롯해 19명이 큰방에서 정진했다. 산철에도 9명 정도의 수행자들이 남아서 정진하며 결제 때에는 선방 수행자들이 방선 이후에 기도, 염불 등 개인정진을 하다가 다시 12시에 잠깐 자고 3시에 일어나 참선(參禪)에 든다. 하안거에는 10시간 동안 매일 일반 정진을 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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