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상원사 청량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33-333-6859 |
| 수행기관 주소 |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14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 인 상원사(上院寺) 내 비구선원이다.
〈그림 1〉오대산 적멸보궁 상원사 청량선원(월간해인, 김선주)
상원사(上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五臺山)에 있다. 성덕왕 4년(705)에 창건하여 진여원(眞如院)이라 하였으며 이곳에서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의 신라 두 왕자가 수행 정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나옹(懶翁)의 제자인 영령암(英靈庵)이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보고 중창(重創)의 원을 세웠고, 1376년(우왕 2)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가을 낙성을 보았다. 그 해 겨울 선객(禪客) 33명을 모아 10년 좌선(坐禪)을 시작하여 5년 째인 1381년에는 5주년 기념 법회를 열었다.
조선시대에는 척불정책 속에 전국의 사찰이 황폐되었지만, 오히려 이 절은 발전하였다. 척불정책의 대표적인 왕이었던 태종은 상원사의 사자암을 중건할 것을 명하고 법요식(法要式)과 낙성식을 열었다. 또한 세조는 문수동자(文殊童子)를 만나 괴질(怪疾)을 치료받고, 고양이의 도움으로 자객의 습격을 피하게 되어 세조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세조는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의 권유로 상원사를 중창하고, 나한전(羅漢殿), 청련당(淸蓮堂), 재주실(齋廚室)을 지었는데 재주실을 승당(僧堂)과 선원(禪院)으로 삼았다. 세조는 의발(衣鉢)과 좌구(坐具) 등 수선(修禪)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사하였고, 그 해 52명의 선객을 모아 수선(修禪)을 시작하였다.
1946년 선원 뒤에 위치했던 조실(祖室)이 건물에 전소되었 던 것을 1947년 당시 월정사 주지였던 지안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의 건물을 본떠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ㄱ’자형 선원을 중심으로 승당인 소림초당(少林草堂), 영산전(靈山殿), 종각인 동정각(動靜閣), 후원(後院) 등이 있다. 선원은 청량선원(淸凉禪院)이라고 하는데 오대산을 일명 청량산(淸凉山)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상원사의 선원 개원의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1913년 본사인 월정사 선원이 개원되었고 당시 월정사 본말사에 2개의 선당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상원사에 선방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원사 선방에 안거한 스님은 운봉(雲峯), 동산(東山), 동광(東光), 방한암(方漢岩)이 있다. 한암(漢岩)은 1925년 봉은사의 조실로 있다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하는 앵무새가 되지 않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상원사로 들어가 보림하였다.
상원사 선원은 오대산 선방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한암과 설운의 선풍(禪風)으로 수선 안거도량이 되었다. 〈종정열전〉에 의하면 한암선사의 지도를 받은 박설산(朴雪山)이 당시 상원사의 수행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1940년대에 상원사 선원은 매철마다 40~50명에 가까운 수행자들이 수선 정진하였으며 많게는 80여 명의 납자가 안거에 들었다. 1950년 이후 상원사 선원에서 청량선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 매해 30~40명의 스님이 탄허를 조실로 모시고 수선 정진하였으며, 오늘날 많은 수행자가 참선을 하는 대표적인 선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청량선원은 한암의 청규를 철저하게 지킴에 가풍과 정신을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다.
〈청량선원의 청규〉
① 반산림 등산과 자유 정진은 하지 않는다.
② 개인적인 포행은 북대와 산장(山牆)다리를 지나지 못한다.
③ 안거중에 사무실, 중대, 후원의 출입을 금한다.
④ 안거중 개인 차는 가져오지 못한다.
⑤ TV, 신문, 잡지 등은 보지 못한다.
⑥ 안거중 정진 시간은 오전 3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한다.
⑦ 입방자는 비구계를 수지한 자로 3안거 이상 성만한 자로 제한한다.
⑧ 안거중 청규를 위반한 자는 자진 퇴방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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