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불국사 불국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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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기관 전화 | 054-746-9913 |
| 수행기관 주소 |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불국사(佛國寺) 불국선원(佛國禪院)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사이며, 1976년 월산(月山)선사를 조실로 모시며 선맥이 이어져내려왔다.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사로 법흥왕 15년(552)에 창건되었다. 경덕왕대에 재상 김대성(金大城)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창건하고,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는데, 751년에 불사를 시작하였지만 낙성을 보지 못하고 대성이 죽자 혜공왕 10년(774) 나라에서 완성했다.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고 임진왜란 때 2천여 칸의 당우들이 전소되어 석축만 남았다. 그 후 1612년 해안(海眼)이 자하문·범종각·대웅전·극락전 등을 복원했다.1969년 부터 1973년까지 불국사 복원 불사가 진행되었고, 1974년 월산(月山)이 주지로 부임하며 일주문·사천왕문·정혜료·불국선원이 지어졌다.
불국선원은 1974년 향곡(香谷)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대중들이 안거에 들었다. 현재 선원건물은 1976년 5월 29일 당시 주지였던 월산(月山)이 1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은 것이다. 월산은 어느 겨울날 현재의 선원 자리를 바라보던 중 그곳만 눈이 녹아 있어 터가 좋다는 사실을 알고 선원을 짓게 되었다.
선(禪)이 왕성하면 불교가 왕성하고 불교가 왕성하면 나라가 왕성하게 된다는 취지로 불국사 복원 되었는데, 선원이 없는 걸 안타깝게 여긴 월산스님은 불국선원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불국선원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범룡(梵龍)·송담(松潭)·일타(日陀)·법달(法達)·정일(淨日)·혜정(慧淨) 스님 등 종사가 거쳐가면서 선풍이 이어졌다.
〈그림 1〉불국사 불국선원(불교신문)
〈그림 2〉불국사 불국선원(불교신문)
불국선원은 불국사 중심 공간으로 들어서기에 앞서 연화 칠보교, 청운 백운교와 연결된 석축 좌측으로 돌아서 종무소 쪽으로 들어가 주지실을 지나 완만한 언덕을 넘어가면 모습을 드러낸다.
선원은 큰방과 염화실·객실·지대방·간병실·다각실·식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천 3백여 평의 대지에 건평만 1백 56평이다. 큰방의 선실 구조를 보면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모신 가운데 방 양옆으로 한층 높여서 좌선 공간을 두었는데, 각자 공부 할 수 있는 28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어 편안히 수행할 수 있다.
〈그림 3〉불국사 불국선원(불교신문)
〈그림 4〉불국사 불국선원(불교신문)
불교선원 월산의 가풍은 ‘항상 어젯밤 중 일을 관하며 새벽에 일어나 선에 드는 것’인데, 대중들에게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 질서가 유지되는 자유를 가르쳤다. 월산이 조실로 주석할 당시에 동안거 때는 용맹정진과 가행정진을 했으며 안거 때마다 가행정진을 두 차례 실시했다. 1999년도 하안거는 선원장 설당(雪堂), 입승 혜봉(慧峰) 등 28명의 수행자들이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정진하였다. 수용인원은 참선할 수 있는 각자의 방이 28개 있으므로 28명이상 받을 수 없으며, 사미와 비구를 가리지 않고 받았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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