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북대 미륵암 상왕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33-333-1031 |
| 수행기관 주소 |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5-89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末寺)인 상원사(上院寺) 내 비구선원이다.
〈그림 1〉[하안거 결제 현장을 가다] 오대산 북대 상왕선원(불교신문, 박부영)
상원사(上院寺)는 오대산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末寺)이다. 신라 성덕왕 4년(705)에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에 의해 창건되었다. 어느 날 두 왕자인 보천과 효명은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인 동대만월산(東臺滿月山)·남대기린산(南臺麒麟山)·서대장령산(西臺長領山)·북대상왕산(北臺象王山)·중대지로산(中臺地爐山)을 참배하러 갔다. 동대에서 1만의 관세음보살 진신(眞身)을 친견한 뒤, 남대에서는 1만의 지장보살을, 서대에서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 아미타불)를 비롯한 1만의 대세지보살을, 북대에서는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500명의 아라한을, 중대에서는 비로자나불을 비롯하여 1만의 문수보살을 뵙고 참배하였다. 그리고 매일 새벽이면 문수보살이 진여원(眞如院, 지금의 상원사)에서 부처·보탑·금종(金鍾)·만등(萬燈) 등 36가지의 형상을 나타내 보였다. 두 왕자는 매일 차를 달여서 문수보살에게 공양하고 저녁이 되면 각자의 암자에서 수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나옹(懶翁)의 제자 영로암(英露庵)이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중창하였다. 고려 말부터 시작된 척불(斥佛) 정책은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거세어져 불교는 극박한 박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태종은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고 11종(宗)이던 불교 종파를 7종으로 통합하는 등 척불에 앞장섰으나 만년에는 상원사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기도 하였다.
상원사 입구에서 큰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킬로미터 가량 올라가면 길 왼쪽으로 상왕봉 중턱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가 북대(北臺) 상두암(象頭庵)이 미륵암이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두암의 창건은 보천태자의 유언에 따라 이루어졌다. 석가모니불을 수반으로 한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시는 곳으로서 이곳에 나한당(羅漢堂)을 지으라고 한 태자의 유언에 따라 절을 세우고 이름을 백련사(白蓮社)라 하였다. 그 뒤 수백 년 동안 나한도량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이 암자의 이름이 중간에 바뀐 이유는 나옹(懶翁)과 관련이 있다.
북대는 백련결사처에서 고려 나옹선사에 의해 선(禪) 수행처로 변모한다. 본래 마음을 찾아 성불에 이르는 목표는 같지만 그 길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리했다. 북대 역시 당시 상황과 요구에 따라 모습을 바꾸었다. 1360년 중국에서 돌아온 나옹선사는 오대산 북대에 상두암(象頭庵)을 열고 선을 지도했다. 당시의 이야기가 북대에 전해온다. 북대의 16나한상을 상원사로 옮기기로 하고 혼자 하겠다고 나섰다. 나옹선사는 나한전으로 들어가 “이 화상이 업어서 옮겨 주기를 기다리는가” 했더니 나한상들이 스스로 일어나 차례로 상원사로 날아갔다. 그런데 나한상 한 기가 칡넝쿨에 걸려 가지 못해 들고 옮겼다. 이에 나옹선사는 오대산 산신을 불러 이운불사(移運佛事)를 방해한 칡넝쿨을 오대산에서 몰아낼 것을 명하니 이때부터 오대산에는 칡넝쿨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는 북대가 염불신행 도량에서 선수행처로 바뀌었음을 말한다. 그로부터 북대는 선원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수많은 스님이 이 곳에서 수행 정진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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