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복천암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43-543-4774 |
| 수행기관 주소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702-5,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 1-19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복천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인 복천암이다. 조선 초에 신미, 수미, 학열이 주석하였고, 근세기에 경허, 동산, 청담, 전강, 성철 선사가 선원에서 참구하거나 조실을 맡아 호서제일선원으로 불린다.
〈그림 1〉복천암 옛 모습(복천암)
복천암(福泉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산내 암자이다. 이 절은 720년(신라 성덕왕 19)에 의상 대사의 제자 진정(眞定)이 창건했다는 설과 1107년(고려 예종 2) 자정(慈淨) 국존(國尊)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어 창건 시기는 확실치 않다. 776년(신라 혜공왕 12) 진표 율사의 제자 영심(永深)이 중창하고, 918년(고려 태조 1)에 증통(證通) 국사가 중창하고, 1449년(조선 세종 31) 12월에 혜각(慧覺) 존자 수암 신미(秀巖信眉)가 중창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여러 번 사찰 중수와 불상 및 불화 조성을 하였으며, 최근에 와서는 당시 법주사 주지였던 탄성(呑星)과 월성(月性)이 불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림 2〉복천암 전경(복천암)
복천암은 복천선원이라 부를 정도로 예로부터 이곳은 선(禪)과 관련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조선 세종, 세조 때는 신미(信眉), 수미(守眉), 학열(學悅)이 주석하면서 선법을 드높였다. 1882년에는 경허가, 1922년에는 동산(東山)이 33세의 나이로 하안거를 지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안거 때 정진하였다. 1927년경에는 청담(靑潭)이 정진했다. 1920년 말부터 법주사 제4대 주지를 역임한 석상(石霜)이 선원의 모습을 새롭게 다졌으며, 1934년에는 전강(田岡)이 선원의 조실을 맡아 납자들을 제접(提接)하면서 활구선의 참모습을 보여 주었다. 1943년에는 돈오돈수의 한국 선풍을 드높인 성철과 청담이 하안거를 지내며 치열하게 정진하였다. 이후에도 많은 스님이 수선(修禪) 정진했는데, 특히 한암의 법제자 보문(普門)의 견처(見處)가 뛰어났다. 그 후 6·25 발발과 정화의 격동 속에서 선원의 문을 닫게 되었다.
1967년에 수좌를 양성하자는 금오(金烏)의 뜻에 따라 복천선원의 재건을 결의한 후, 1980년 현재의 선원장 진옹 월성(震翁月性)이 주석, 정진하면서 대웅전을 비롯한 선원 및 요사를 중수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납자를 받아들여 명안 종사들을 키워내고 있다.
〈그림 3〉복천선원(복천암)
복천암선원은 ㄴ자형 2층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이다. 정중앙에는 ‘복천선원(福泉禪院)’ 현판이, 측면에는 ‘호서제일선원(湖西第一禪院)’ 현판이 걸려있다. 수용 인원은 8~14명 정도이다. 2000년대 들어서 월성(月性)이 선원장(禪院長)과 선덕(禪德) 소임을 보면서 선원의 정진 대중을 제접하였다.
〈그림 4〉복천선원 현판(복천암)
〈1928년 당시 복천선원 청규〉
① 결제 안거의 입방 연령은 20세 이상 40세까지로 한다. 단 신체 건강한 이는 40세 이상도 허락한다.
② 입방 자격은 중등과 이상을 수료한 자로 한다.
③ 입방을 희망하는 이는 은사, 법사로부터 의발을 이어받아야 한다.
④ 청규절목(淸規節目)을 위반한 경우는 회주 직분으로 퇴방을 명한다.
⑤ 여름, 겨울 두 안거를 원만하게 성취한 이에게는 안거증을 수여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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