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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벽송선원

수행기관 명칭벽송사 벽송선원
수행기관 전화055-962-5661
수행기관 주소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59
수행기관 구분비구선원
벽송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인 벽송사의 선원이다. 1900년경 경허(鏡虛)가 선원을 개하였으며, 벽송 대사의 구법일념(求法一念) 정신으로 수선(修禪) 정진하였다.
전통 사찰 제12호(등록 1973.11.03.)인 벽송사(碧松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이다. 벽송사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 양식을 보이므로 신라 말 내지 고려 초기에 개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1520년(중종 15)에 벽송 지엄(碧松智嚴)이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다. 1559년(명종 14)에 호연 학정(浩然學淨)과 의엄(義嚴)이 옛터에 가람을 넓혀 다시 세웠다. 1704년(숙종 30)에 화재로 인하여 폐사된 절을 환성 지안(喚醒志安)이 의연금(義捐金)으로 가람을 옮겨 중창하였다. 1850년(철종 원년)에 서룡 상민(瑞龍祥玟)이 모연 중수하였으나, 6·25 때 다시 소실되어 1960년에 원응 구한(元應久閒)이 쓰러진 가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 선맥을 이어온 벽계 정심 – 벽송 지엄 – 부용 영관 – 청허 휴정뿐만 아니라 환성 지안, 서룡 상민 등 여덟 분의 조사가 이 벽송사에서 나왔다.
〈그림 1〉벽송당 지엄 영정(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벽송선원은 1900년경 개원하였다. 당시 경허(鏡虛)가 호남 일대에 선원을 다수 개설하였는데 벽송선원도 이때 정식으로 선문을 열었다. 1960년에 원응이 중창할 때 벽송사의 여러 건물 폐자재로 선방을 지었다고 한다. 선원을 개원하자 5~6명의 스님이 수선 안거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중들은 백장청규를 철저히 지키며 정진하였다. 식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일체 외부 도움 없이 스님들의 울력으로 해결하였다. 원응은 결제나 해제 그리고 반살림 때 대중을 불러놓고 소참법문을 하면서 납자들의 공부를 점검하기도 하고 수시로 직접 선방에 들러 후참 납자를 제접하였다.
〈그림 2〉벽송선원 현판(영신)
벽송선원의 가풍은 벽송 대사의 구법일념(求法一念) 정신을 이어받아 정진에만 몰두하고 있다. 일념으로 집중하는 정진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조석과 사시 공양 예불을 제외하고는 법당에서 일절 집전하지 않는다. 1989년 하안거 때, 주지 영구(靈龜)가 선원을 외호(外護) 하면서 안거 대중의 명단이 선원 방함록에 등재되기 시작했다. 1999년도 하안거에는 입승 초암(草庵)과 함께 큰방에서 8명이 수선했고 큰방 밖에서 3명의 납승이 정진했다. 10시간 일반 정진하고 근기에 따라서 자유롭게 가행 정진하였으며 주지 혜광(慧光)이 선원을 외호했다. 성철(性徹), 혜암(慧菴), 법전(法傳) 등을 역대 조실로 모셨던 벽송선원은 몇 년간 휴원하다가 2005년 다시 개원하였다. 2006년 산철 결제 기간에 11일 동안 100여 명의 수행납자들이 참여해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전통을 되살린 선회(禪會)를 열었다. 아침과 저녁으로 4시간씩 간화선 실참 수행하고 오후에는 선종사상사와 간화선[강사: 월암], 전심법요[강사: 황벽] 등의 교학 강의를 진행하였다. 2021년까지 9명에서 19명의 안거 대중이 정진하다가 2022년 다시 휴원하였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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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원총람
    도서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불학연구소 편 | 서울: 불교시대사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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