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법주사 총지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43-543-0481 |
| 수행기관 주소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총지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선원으로서 덕숭 문중 법맥을 이은 금오 태전의 선풍이 이어지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法住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법주사라는 이름은 신라 553년(진흥왕 14) 의신(義信)이 인도에서 나귀에 경전을 싣고 이곳에 와서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삼국유사』 권 4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의하면 진표(眞表) 율사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시해 두었다가 영심(永深), 융종(融宗), 불타(佛陀)에게 법을 전해주며 그곳에 절을 세우고 교법(敎法)에 따라 인간 세상을 구제하고 후세에 유포하라고 하였다. 이에 영심 일행은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짓고 길상사라 하였으며(신라 776년, 혜공왕 12) 미륵불을 조성하고 처음으로 점찰 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절은 고려 인조 때까지 속리사로 불렸다. 『동문선』에도 ‘속리사’라는 시(詩)가 실려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길상사에서 속리사로, 다시 법주사로 바뀐 듯 하나 그 과정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이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써 위용을 자랑했으나 임진왜란 때 산내 암자까지 모두 전소하게 되었다. 1626년(인조 4) 벽암 각성(碧岩覺性)이 중창한 뒤 여러 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림 1〉법주사 전경(대한불교조계종 법주사)
1998년도 법주사 궁현당(窮玄堂)을 해체 보수할 때 발견한 상량문을 살펴보면, 정유재란 이후 법주사 대웅보전 및 팔상전 등이 소실된 가운데 맨 처음 건립된 당우가 선당(궁현당)이라 한다. 이는 법주사에 부휴(浮休) - 벽암 각성 등의 선맥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자료이다.
1967년 경허, 만공의 덕숭 문중 법맥을 이은 금오 태전(金烏太田)이 퇴락한 전각을 중수하고 법주사에 주석하며 선풍을 일으켰다. 이후 금오의 법맥이 법주사에서 뿌리내리게 되었다. 1969년 10월 당시 주지 월남(月南)과 재무 탄성(呑性)이 금오의 뜻을 받들어 월산(月山)을 조실로 모시고 총지선원을 개원하였다. 1978년에는 법주사 대웅보전 뒤에 동암을 건립하여 정오(正悟)선원을 개원하였다.
총지선원은 1985년 법주사 사내(寺內)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가 1992년부터 다시 열었다. 1993년 하안거 때, 법주사 외곽에 용화당(龍華堂)이 완공되자 그곳으로 선원을 옮겼다. 1997년 염화실 뒤편 선원 불사가 완비되어 다시 자리를 옮겨 금오의 선풍을 이어가고 있다.
금오는 “선리(禪理)가 없다면 불법의 명맥이 끊기는 것”이라고 하여, 격외선 법문과 철저한 계행을 바탕으로 한 수행을 강조하였다.
〈그림 2〉불기 2557년 하안거 결제 법회(대한불교조계종 법주사)
2000년대 이전 방함록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총지선원의 선원장으로는 월남, 탄성, 월만, 혜정, 이두, 월탄, 정일, 월성, 진광 등이었다. 그 이후에는 함주(含周), 관명(觀明), 덕암(德岩), 수원(壽圓), 대성(大成), 원응(圓應) 등이 20명에서 27명의 대중과 함께 정진하고 있다.
총지선원 건물은 팔작지붕 디귿(ㄷ) 자 형태로 정면 12칸, 측면 3칸이다. 선원의 총건평은 140평인데 스님들이 참선하는 큰방은 30평으로 적정 수용 인원은 20명~25명 정도 가능하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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