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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운문선원

수행기관 명칭백양사 운문선원
수행기관 전화061-392-7706
수행기관 주소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5,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산 115-1
수행기관 구분비구선원
운문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선원이다. 각진 국사 복구(復丘)가 창건하였으며, 이 선원에서 수행한 만암 종헌과 서옹 상순이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으로 선출되며 현대불교계를 주도하였다.
백양사는 632년(백제 무왕 33)에 신라 고승 여환(如幻)이 창건하고 절 이름을 백암사(白巖寺)라고 하였다. 이후 고려 명종 대(代) 성조 중연(性照中延)이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고 불렀다. 1350년(충정왕 2) 각진 국사(覺眞國師) 복구(復丘, 1270-1355)가 3창하였으며, 1786년(정조 10) 환성(喚惺)이 4창하였고, 조선 말기 고종 원년 도암(道巖)이 5창하였다. 근현대의 고승 만암(曼庵)이 6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문암[운문선원]은 고려 말 복구(復丘)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 후 조선 후기 청허 휴정의 문도 편양 언기의 적손인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의 문손들이 호남지역 불교계를 주도하여, ‘북마하연 남운문암(北摩訶衍 南雲門庵)’이라는 명성을 드날리며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근대의 고승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6)은 1914년에 백양사 고불선원을 세웠으며 1947년에 최초로 고불총림을 결성하였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백양사의 선풍을 다시 드날린 것은 1984년에 서옹 상순(西翁尙純, 1912-2003)이 운문선원의 문을 열면서부터이다. 서옹은 ‘참사람 운동’을 통해 선(禪)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주창했다. 운문선원은 근대 이후에만 교정과 종정이 7명이나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그림 1〉운문선원 전경(대한불교조계종 백양사)
백양사 운문선원은 서옹 선사를 방장으로 추대하고 유나 지선(知詵), 일수(一守), 선원장 동참(東旵), 무아(無我), 무공(無空) 등이 대중의 수행을 살펴주었다. 정진대중은 13명에서 19명까지 꾸준히 안거에 들며 2019년 동안거까지 방함록에 올리다가, 그해 11월 6일 조계종 중앙총회 제217회 정기회에서 고불총림이 지정 해제되었다. 2020년 하안거부터는 백양사 운문선원으로 방함록에 올렸으며 선덕(禪德) 월송(月松), 선원장 정견(正見)이 11명에서 21명의 대중과 함께 정진하였다. 선원의 청규는 엄격하여 하루 10시간 정진해야 하며 안거 중에는 산문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청규를 지키라는 권유를 세 차례 받고도 불응하면 곧바로 퇴방 조치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그림 2〉운문암 전경(대한불교조계종 백양사)
운문암은 백암산 골짜기 해발 523m 지점에 있으며, 기린봉과 사자봉을 잇는 능선이 선원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암자는 정남향이며, 현재 선방 3동과 요사채 등이 건립되어 있다. 대지 규모는 82×26m이며, 동-서로 긴 평탄지 위에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운문암에는 조선 전기 유물로 추정되는 집선문 와편 소량이 포함되어 있으며, 집선복합문(집선문+차륜문), 수파문 와편, 백자편 등이 주를 이룬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유물은 청자편이다. 이 청자편은 운문, 기하문 등이 상감 되어 있으며, 내면에는 일부 흑상감 기법도 사용된 것이다. 이 유물은 비록 작은 파편에 불과하지만 14세기 무렵에 이미 이곳에 사찰이 운영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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