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도성암선원 |
|---|---|
| 수행기관 전화 | 053-614-9167 |
| 수행기관 주소 | 대구 달성군 유가읍 도성길 180, 대구 달성군 유가읍 양리 143-1 |
| 수행기관 구분 | 비구선원 |
도성암(道成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팔공총림 동화사의 말사인 유가사의 부속 암자이며, 경상북도 3대 참선수도처 중의 하나이다.
도성암(道成庵)은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의 말사인 유가사의 부속 암자로 비슬산 700고지에 있다. 도성암선원은 옛날 가섭 부처님이 이 도량에서 천 명의 성인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여 그 깨달음의 인연을 기다리는 정성천왕(靜聖天王)이 늘 머무는 ‘천인득도지(千人得道地)’라고 하며 경상북도 3대 참선도량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림 1〉도성암 도성선원(디지털달성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성암은 신라 흥덕왕 2년(827)에 도성(道成)이 창건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도성은 이 산에서 관기(觀機)와 교유하였는데 관기의 암자는 남쪽 영마루에 있었고 도성의 거처는 북쪽 바위굴(도성 바위)이었다. 그 사이가 십 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 싶어 하면 산의 나무가 모두 남쪽으로 구부러져 관기가 그것을 보고 찾아가고, 또 관기가 도성을 보고 싶어 하면 나무들이 북쪽으로 기울어져 도성이 알아차리고 찾아갔다고 한다. 하루는 도성이 참선 중에 바위굴에서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가는 이적(異蹟)을 보이며 행방을 감추자 관기도 따라서 입적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성종 1년(982)에 성범(成梵)이 중창하고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을 개설하여 50여 년간 기도하니 여러 가지 신비로운 일들이 나타났다. 1969년 성찬(聖讚)이 이곳에 와서 불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도성선원, 삼성각, 염화실, 요사 등이 들어서 있다.
도성암에 선풍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63년경에 창현 지옹(昌鉉智翁)이 지금의 대웅전 앞에 조그마한 선방을 짓고 2~3명의 수선 납자와 정진하면서부터다. 1969년 청운 성찬(靑雲聖讚)이 이곳에 와서 참선 정진하다가 옛 선방을 뜯어내고 그 옆자리에 선원을 지었다. 1974년 가을부터 손수 기와를 등짐으로 져 나르며 선방 불사를 시작해서 1976년 3월 18일 준공하여 도성선원이라 이름하고 개원하였다.
선원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건평 30평으로 수용 인원은 10명 정도다. 대중이 많을 때는 큰방 대중 스님만 18명, 큰방 외 2명이 수행하기까지 했다. 1999년도 하안거에는 살림이 넉넉지 못하여 입승 석곡(石曲) 외 5명의 납자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10시간 동안 일반 정진하였다. 선원 내부에는 선불장(選佛場)이라는 현판이 있다. 도성선원은 방부를 받는데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저 부지런히 참선하여 견성(見性)하는 데만 주력한다.
도성암선원은 안거 철마다 입승과 함께 보통 7명 정도의 대중이 정진하였다. 2018년부터 3년 동안 휴원하였다가 2021년 하안거부터 다시 선원문을 열었다.
〈도성암 조실 성찬(聖讚) 임종게〉
비로자나 부처님은 헤아릴 수 없이 우뚝 솟아 있고,
동해는 널리 이르지 않은 곳이 없네.
산과 바다는 청정 부처님이요,
바람 소리는 조사의 노랫소리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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