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봉암사 태고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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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기관 전화 | 054-571-9088 |
| 수행기관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
| 수행기관 구분 | 종립선원 |
경북 문경에 위치한 조계종의 특별 종립선원으로 조계종을 대표하는 간화선 수행도량이다.
봉암사는 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봉암사의 역사는 신라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지증 도헌(智證道憲, 824-882)이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을 봉암사에 개창한 이후 계속 번창하였다. 935년(태조 18) 정진이 사찰에 머물 때 3천여 대중이 머물러 정진을 하였고 이후 보조 지눌을 비롯한 수 많은 선승들이 수행하였다.
〈그림 1〉봉암사 태고선원 전경(월간 고경 2022년 3월호, 정종섭)
봉암사에 근대적인 선원이 개원된 때는 1947년이다. 해방 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를 재정비한 결사도량으로 다시 태어난다. 성철(性徹)·청담(靑潭)·자운(慈雲)·우봉(愚峰) 4인이 “봉암사 결사”를 시작하였고 이후 향곡(谷)·월산(月山)·종수(宗秀)·보경(寶境)·법전(法傳)·성수(性壽)·혜암(慧菴)·도우(道雨) 등 20인이 결사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법당에 부처님과 부처님 직전 제자만 모시기로 하고 칠성탱화나 신장탱화 등을 없앴으며, 신도가 올리는 불공 역시 스스로 직접 공양물을 마련하여 기도하도록 하였다. 가사·장삼·발우도 새로 만들어 사용했는데 오늘날 조계종 승려들이 사용하는 것의 바탕이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포살을 처음 시작하였고 백장청규를 되살려 기본 일과로서 대중 스님들 손수 밥하고 나무를 하게 하였으며 탁발을 다니면서 음식을 구하도록 하였다. 봉암사 결사 이후 한국불교의 사찰 운영과 승가생활 제도가 대폭 개선되었다. 스님과 신도의 관계 역시 변화시켰다. 신도는 부처님의 제자인 승려에게 3배를 하도록 했고, 승려로부터 능엄주력과 3천배를 권유받았다.
6.25 전쟁 이후 봉암사는 황폐화되었으나 1970년 초부터 결사의 정신을 되살려 공부하는 승려들이 봉암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 봉암사 선원의 이름은 희양선원이었다. 1972년 향곡, 1980년에는 서암이 정식으로 봉암선원 조실로 오게 되면서 선원은 진정한 수행도량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1982년 6월 조계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하였고 이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여 수행 중심의 도량이 되었다. 1984년 종단 상임위에서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하였다. 1990년 2월 화재로 인해 선원과 요사채 건물이 전소하였으나 그 후 선원을 다시 지어 태고선원(太古禪院)이라고 이름 붙였다. 1982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봉암사는 일반인들은 물론 신도들의 출입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1년에 한번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봉암사 가람은 경내와 서쪽 편의 독립된 선원으로 구분된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극락전이 있고, 그 우측으로 산신각이 있다. 대웅보전 동쪽으로는 금색전(金色殿), 조사전, 비각이 있다. 태고선원은 경내 서쪽의 독립된 구역에 위치하는데 선원을 중심으로 봉암사 전각이 배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후원은 외호 대중이 참선에 드는 선원이다. 대웅전, 보림당, 조사전, 관음전, 극락전, 염화실, 지대방 모두 선원을 외호한다. 태고선원의 큰 방은 정면 9칸의 팔작지붕이고 성적당은 정면 7칸의 팔작지붕이며 관음전은 작은 규모의 정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봉암사에는 지정문화재가 모두 10점 있는데, 보물로서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봉암사삼층석탑·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 등이 있고, 시도유형문화재로서 봉암사마애보살좌상·봉암사극락전 환적당지경탑·함허당득통탑·봉암사석종형부도 등이 있다.
태고선원에는 선방이 여러 개가 있어 상황에 맞게 정진이 가능하다. 상황에 맞추어 용맹정진, 가행정진, 원력정진, 외호대중 정진의 4종 중 하나를 수행할 수 있다. 하안거 결제를 예로 들면, 관음전에서는 22시간 용맹정진, 성적당에서 14시간 가행정진, 태고선원 큰방에서는 10~12시간 원력정진, 후원에서는 외호대중이 5~6시간 정진하며 소임을 맡는 식이다. 철마다 다르지만 큰방에서 30~80여명, 큰방 이외의 곳에서 10~20여명, 외호 대중 3~5명 정도 수행정진할 수 있다. 역대 향곡스님, 서암스님, 월산스님, 범룡스님 등이 조실로서 안거에 참여하였다.
봉암사 태고선원의 특징은 도량 전체가 선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공부하는 수좌들을 위해 존재한다. 주지도 대중의 한 사람으로 수행에 들면서 수좌들을 지원한다. 선원은 동안거·하안거 뿐 아니라 봄·가을에도 결제를 진행하므로 사시사철 안거 정진 수행이 이어지는 셈이다. 목탁 대신 죽비로, 예불문 대신 부처님께 3배하는 것으로 예불을 마친다. 태고선원의 정진 일과표는 다음과 같다.
〈태고선원 수행 일과표〉
- 오전 3시 기상, 예불, 입선
- 5시 방선
- 6시 아침 공양
- 8시 입선
- 11시 방선, 사시예불, 공양
- 오후 2시 입선
- 4시 방선
- 5시 저녁 공양
- 6시 예불, 입선
- 9시 방선, 취침
이 일과표는 원칙적인 시간배정이며 근기와 개인의 정진력에 따라 수행처가 따로 배정되어 정진 시간을 달리하고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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