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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正秀)

활동왕조 통일신라
활동시기 [9세기]
아기 울음소리에 귀 기울여
정수(正秀)는 경주 황룡사(皇龍寺)에 머물고 있었다. 스님의 구체적인 행적을 알려주는 자료는 전하지 않고, 신라 애장왕(재위 800~809년) 시대에 있었던 일화만 전한다. 어느 해 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이었다. 아직 초저녁이지만 매서운 겨울인지라 거리에는 벌써 인적이 끊어졌다. 정수 스님은 일이 있어 삼랑사(三郞寺)에 갔다가 황룡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경주 삼랑사 당간지주(출처 : 국가유산청)
스님이 염불을 외우며 발목까지 덮는 눈길을 헤치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천엄사(天嚴寺)에 가까이 왔을 때 어디에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위를 둘러보니, 천엄사 대문 처마 밑에 실신한 여인이 탯줄을 쥐고 갓 태어난 핏덩이를 꼭 껴안고 쓰러져 있었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붉은 핏자국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고, 여인은 얼어 죽어 가고 아기는 새파랗게 질려 얼어 가고 있었다. 스님은 탯줄을 끊고, 천엄사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위급함을 알렸다. 하지만 아무리 사찰 문을 두드려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눈보라만 거세게 휘몰아칠 뿐이었다.
여인을 살리기 위해 벌거벗다
스님은 아기를 품에 안고 언 몸을 문지르고, 여인을 흔들며 정신 차리라고 말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인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스님은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연민으로 두루마기를 벗어 아기를 감싸고 여인을 껴안아 자기 체온을 전달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시퍼렇게 얼었던 여인의 볼에 생기가 돌더니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여인이 정신을 차려 깨어나자, 스님은 자기 바지와 저고리를 벗어 여인을 덮어 주었다. 여인은 체내에 온기가 도는지 가느다랗게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렸다. 아기 낳을 곳이 없었던 여인은 산골짜기에 있는 천엄사까지 찾아왔고, 산통이 있어 천엄사 문을 두드렸는데 날이 저물어서인지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길가에서 아이를 낳다가 쓰러졌다고 하였다.
황룡사 추정 복원도(출처 : 국가유산청)
여인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본 스님은 그곳을 떠나 황룡사로 향했다. 벌거벗은 몸으로 살을 에는 듯한 눈보라 속을 걸어 겨우 황룡사에 이르렀을 때, 스님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사찰 헛간으로 들어가 거적으로 몸을 덮고 쓰러져 밤을 보냈다.
하늘이 국사로 점지하다
스님이 헛간에서 거적에 의지한 채 밤을 새우던 날, 한밤중에 궁궐의 뜰 허공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황룡사 정수 스님을 왕사(王師)로 봉하라.” 허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임금은 황룡사로 급히 신하를 보내 정수 스님을 찾아보게 하였다. 왕명이 지엄한지라 한밤중에 급히 말을 달려 황룡사로 가서 정수 스님을 찾았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신하가 정수 스님을 찾으니, 사찰이 발칵 뒤집혔는데 정수 스님은 승방에 있지 않았다. 사찰 대중이 온 사찰을 뒤지며 정수 스님을 불러서 찾다가 헛간을 살펴보니, 스님이 벌거벗은 몸에 거적만 덮은 채 자고 있었다. 모두 놀라며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스님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신하는 그 일을 상세하게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정수 스님의 무연자비(無緣慈悲)에 크게 감동하여 위의를 갖추어 스님을 대궐로 맞아들이고 국사(國師)로 책봉하였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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