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월명(月明)

활동왕조 통일신라
활동시기 [8세기]
피리 잘 부는 스님
월명(月明)은 경주 낭산 남쪽 기슭에 있는 사천왕사(四天王寺)에 머물렀다. 스님이 주석했던 사천왕사는 신이한 기적을 행하여 재난을 물리치고 국가의 안전을 기원한 신인종(神印宗, 진언종) 사찰이었다. 670년 전후 당나라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함에 신라 문무왕이 명랑 법사(明朗法師)에게 적을 막아낼 계책을 구하자, 비단과 풀로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문두루(文豆婁, Mudrā, 眞言) 비법을 써서 당나라 군대를 침몰시켜 물리쳤다. 그 후 679년에 절을 완성하였다.
경주 사천왕사지 당간지주(출처 : 국가유산청)
월명 스님은 피리를 잘 불어서, 달밤에 피리를 불면 달이 그를 위해 운행을 멈출 정도였다고 한다. 스님은 능준 대사(能俊大師)의 문도라는 것 외에 다른 사실은 알려진 게 없고, 8세기경에 스님이 직접 지은 2편의 향가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도솔가」로 괴변을 물리치다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의 이야기이다. 760년 4월 초하룻날,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나란히 나타나 열흘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천문 관측과 점성을 담당한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 꽃을 뿌려 부처님께 공양하는 공덕[散花功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궁궐의 정전(正殿)인 조원전(朝元殿)에 단을 만들고, 임금이 청양루(靑陽樓) 누각으로 행차하여 인연 있는 스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때 월명 스님이 남쪽으로 난 밭둑길을 걷고 있었다. 이를 본 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스님을 청하고, 단을 열고 불교의 범패인 산화가(散花歌)를 짓게 하였다. 산화가는 부처님께 무엇인가 청하거나 찬미하면서 종이로 만든 꽃송이를 부처님 앞에 흩뿌리며 부르는 범패를 말한다. 스님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빈도는 국선(화랑)의 무리에 속하여 단지 향가(鄕歌)만 알 뿐이며, 범패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에 임금이 향가를 청하며 말했다. “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점지되었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소.” 스님이 곧바로, “오늘 여기에서 산화가를 불러 푸른 구름에 한 송이 꽃을 날려 보내니, 도솔천의 부처님을 모셔 오너라.”라는 내용의 노래를 지어 부르니, 태양의 괴이함이 사라졌다. 그때 부른 노래를 「도솔가(兜率歌)」라 하고, 향찰로 기록하여 전하고 있는데, 현대어로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다.
오늘 여기에서 산화가를 부르면서 뿌린 꽃이여 도솔천으로 올라가서 곧은 마음의 사명으로 미륵부처님을 모셔 오라.
미륵 동자가 차와 염주를 받들다
스님은 「도솔가」로써 백성을 기쁘고 편안하게 하였고, 임금의 근심을 해결해 주었다. 임금은 흡족해하고, 스님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좋은 차 한 봉지와 수정 염주 108개를 하사하였다. 이때 곱고 말쑥한 동자가 문득 나타나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아 차와 염주를 받아 들고는 전각의 서쪽 작은 문으로 나갔다. 스님은 내궁(內宮, 궁궐 여인들의 거처)의 사자(使者)라고 여겼고, 임금은 스님의 시자(侍者)가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확인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임금이 사람을 시켜 동자를 따라가게 하여 보니, 그는 궁궐 안에 있는 미륵보살을 모신 탑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고, 차와 염주는 남쪽 벽화의 미륵상 앞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눈으로 보았고 민간인들에게까지 알려졌으니, 스님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부처님을 감동하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임금은 스님을 더욱 공경하여 다시 명주 비단 100필로 성의를 표현하였다.
「제망매가」로 누이를 천도하다
누이의 극락왕생을 발원한 이야기도 전한다. 스님에게는 누이가 있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 스님은 누이를 잃은 슬픔을 가슴 저리게 간직하고, 누이를 위하여 천도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서 슬픔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스님이 누이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천도재를 지내면서, “생사의 길이 가로막혀 간다는 말도 못하고,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리 남매 한 가지에 태어나고도 가는 곳을 함께하지 못하지만, 훗날 극락세계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도(道) 닦으면서 기다리겠다.”라는 내용의 노래를 읊었다. 노래를 마치자 문득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종이돈을 날려 누이의 노잣돈으로 삼을 수 있게 서방 극락세계 방향으로 사라지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그때 부른 노래 「제망매가(祭亡妹歌)」가 향찰로 기록되어 전하는데, 현대어로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다.
삶과 죽음의 길은 이승에 있음에 가로막히고 ‘나는 갑니다’라는 말도 다 말하지 못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낙엽처럼 한 부모에서 태어나고도 가는 곳은 함께하지 못하는구나. 아아 서방정토에서 만날 날을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