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왕조 | 통일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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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시기 | [8세기] |
향가로 불교를 전하다
영재(永才)는 지리산에 은거한 고승으로, 향가(鄕歌)를 잘하고 천성이 익살스러웠으며 재물에 연연하지 않았다. 스님은 노래를 잘 지었는데, 향가를 통해 불교 교리를 전달하여 대중을 교화하고 깨달음의 길로 이끌었다.
칼날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다
스님은 90세 무렵 수도(修道)에 집중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길을 나섰다. 그때는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년)이 다스리던 시대였는데, 우박이나 가뭄·지진 등 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기근이 자주 발생하고, 도적이 생겨나는 등 혼란했다.
스님은 지리산으로 가던 길에 험준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현령(大峴嶺, 경북 청도군) 고개에 이르렀다. 스님이 이곳에서 잠깐 쉬려고 할 때, 수십 명의 도적이 나타나 스님을 해하려고 하였다. 도둑들은 스님에게 칼로 위협했지만, 스님은 그들이 들이댄 칼날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태연히 대했다. 도둑들은 칼날 앞에서도 온화한 얼굴빛을 보이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물었다.
“스님 이름이 뭐요?”
“나는 영재라고 하네만.”
도적들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향가를 잘 짓는다는 그 영재 스님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지금 향가를 지어 보시오.”
도적들은 예전부터 영재라는 스님이 향가를 잘 짓는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도적의 칼날 앞에서도 평온하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도적을 위해 노래를 짓다
스님은 위협적 상황에서도 화평한 표정을 하고, “나는 수행 도량을 찾아 나서는 길인데, 그대들은 창칼로 숱한 악업을 짓고 있으니 고통스러운 윤회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칼을 내려놓고 선업을 쌓으면 좋은 날이 곧 밝아올 것이고, 마침내는 편안한 정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라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때 부른 「우적가(遇賊歌)」가 향찰로 기록되어 전하는데, 현대어로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다.
내 마음의
모습 구하려고
멀리 새들 깃든 숲을 지나쳐
수행 도량을 찾아 가노라
계율 어긴 그대들은
다음 생에도 고통스런 윤회를 계속할 것이라
창칼로 만드는 숱한 악업에
어찌 좋은 말이 나오리
아아, 다만 안타까움이 있나니
선업을 쌓으면 편안한 정토에 이를 수 있으리라.
도적들과 함께 수행하다
도둑들은 스님이 지어 부른 향가를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아는 듯, 그 뜻에 감복하여 비단 두 필을 건넸다. 스님은 물건을 건네는 도둑들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재물이 지옥으로 가는 근본임을 알고 그것을 피하여 깊은 산에 숨어서 남은 생애를 보내려 하는데, 어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
하고는 비단을 땅에 던져 버렸다. 도적들은 스님이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말과 행동에 더욱 감동되어 칼과 창을 버리고, 자신들의 지난 행위를 반성하였다.
스님은 죽음의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그 순간을 교화의 계기로 삼아, 도둑들에게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 있음을 일깨워, 악업을 멈추고 선업을 닦는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도둑들은 그동안의 죄를 참회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자 스님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스님은 도적이었던 이들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지리산에 들어가 은신하며 깨달음을 구하고자 수행하였고,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