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왕조 | 통일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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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시기 | [7세기] |
서방정토를 염원한 광덕과 엄장 스님
엄장은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년) 시대의 승려이다.
신라 문무왕 시대에 광덕(廣德)과 엄장(嚴莊) 두 스님은 친하게 지내며 약속하길, 먼저 극락으로 가는 사람은 상대에게 알리기로 했다. 광덕 스님은 분황사의 서쪽 마을에 은거해서(혹은 분황사 남쪽 황룡사 서거방西去房에 살았다고도 함) 짚신을 만들어 생계를 꾸리며 아내와 함께 살았고, 엄장 스님은 남악(南岳)에 암자를 짓고 힘써 경작하며 살았다.
경주 구황동 분황사 석탑(출처 : 국가유산청)
향가 원왕생가
광덕 스님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한다는 향가 「원왕생가(願往生歌)」를 부르곤 했다. 양주동의 해석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달이시여, 이제
서방정토까지 가서
무량수불 앞에
알리어 사뢰옵소서.
다짐 깊은 부처님께 우러러
두 손 모아서
왕생을 원합니다, 왕생을 원합니다
그리는 사람 있다고 사뢰옵소서.
아아, 이 몸을 버려두고
마흔여덟 가지 큰 소원 이루실까?
무량수불은 아미타불의 이칭으로, 서방 극락세계에 계신 부처님이다. 무량수불이 성불하기 전 법장보살이었을 때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48개의 서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하여 무량수불이 되었고, 서방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위해 항상 법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서원에 바탕을 두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미타신앙, 정토신앙이다.
광덕 스님이 먼저 서방정토로
하루는 석양이 붉게 물들고 솔숲이 고요히 저물어 가는데 창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미 서쪽으로 가네. 자네는 잘 살다가 빨리 나를 따라오게”
엄장 스님이 문을 밀치고 나와 소리 난 쪽을 살펴보니, 구름 밖으로 천상의 음악 소리가 들리고 광명이 땅까지 이어져 있었다.
다음 날 광덕 스님의 거처를 찾아가니, 광덕 스님은 과연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 그 부인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었다.
엄장의 욕망
엄장 스님이 일을 마치고, 그 부인에게 남편이 죽었으니 함께 사는 게 어떠냐고 말하였다. 부인이 좋다고 하여 광덕 스님의 거처에 머물렀다. 밤에 잘 때 몸을 섞으려고 하니, 부인이 거절하며 말하였다.
“스님이 정토를 구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장 스님이 놀라고 이상하여 물었다.
“광덕이 이미 이렇게 하였는데 나 또한 어찌 꺼리겠소?”
“남편과 나는 10여 년을 함께 살았지만 하룻밤도 같이 침상에 눕지 않았는데 하물며 몸을 더럽혔겠습니까. 그저 매일 밤 단정한 몸으로 바르게 앉아 한소리로 아미타불만 염불하였습니다. 혹은 16관법을 행하고 관이 무르익어 밝은 달빛이 문으로 들어오면 그 빛 위에 올라 가부좌를 하였습니다. 이같이 정성을 다하니 비록 서방정토로 가지 않고자 한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무릇 천 리를 갈 수 있는지는 한 걸음으로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법사의 관은 동쪽으로 가는 것이지, 서쪽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엄장 스님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물러 나왔다.
그 부인은 분황사의 여종이지만, 실은 관음보살의 응신(應身)이었다. 응신이란 중생의 근기에 맞게 나타낸 모습을 말한다.
16관(觀)이란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16종의 관법을 말한다. 마갈다왕국의 아사세(阿闍世, 아자타사트루) 태자가 왕위를 찬탈하려고 부왕 빈바사라(頻婆娑羅) 왕을 가두자, 왕비 위제히(韋提希, 바히데히)가 왕을 몰래 도와주므로 태자가 왕비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왕비는 부처가 있는 곳을 향해 지성으로 예배하고 발원하였고, 이에 부처님이 왕궁으로 가서 16종의 관법을 알려 주셨다. 이 16관법 가운데 산란한 생각을 쉬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극락세계와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차례로 보는 것이 정선관(定善觀) 13가지이다.
원효 법사의 가르침
광덕 부인의 말을 듣고 크게 뉘우친 엄장 스님은 원효 법사에게 가서 깨닫는 방법을 간절히 구하였고, 원효 법사는 삽관법(鍤觀法)을 만들어 가르쳐 주었다. 엄장 스님은 이에 몸을 깨끗이 하고 한뜻으로 관법을 닦았고, 마침내 서방정토에 오를 수 있었다.
삽관법은 쟁관법(錚觀法)이라 하기도 하는데 수행 방법의 실상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삽(鍤)이 농기구라는 점에서 하층민의 도구와 언어를 활용한 수행법으로 짐작된다.
· 집필자 : 이대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