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왕조 | 통일신라 |
|---|---|
| 활동시기 | 7세기 |
청색 구슬을 삼키는 태몽
명랑(明朗)은 신라 진골 귀족 출신이며, 자(字)는 국육(國育)이다. 스님의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지만 대략 7세기 정도에 활동하였다.
아버지는 신라의 17관등 중 8관등인 사간(沙干) 재량(才良)이고, 어머니는 3관등인 소판(蘇判) 김무림의 딸 남간부인(南澗夫人)으로, 자장(慈藏, 590~658년) 율사의 누이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푸른색 구슬을 삼키는 꿈을 꾸고서 셋째 아이를 잉태하였다. 명랑 스님의 가계는 친불교적인 집안으로 큰형은 국교대덕(國敎大德), 둘째 형은 의안대덕(義安大德)이다. 두 형은 대덕의 지위에 있으면서 국왕의 자문역을 맡았으며, 특히 둘째 형은 674년에 승관직인 대서성(大書省)에 임명되었으니, 당시 왕실과 불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용궁에서 가르치고 우물에서 솟아 나오다
스님은 632년에 나라의 후원을 받아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밀교 문헌·도상·의례 및 섭론학이나 신유식학을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불법을 수학한 과정이나 행적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635년, 귀국하는 길에 용왕의 청에 의하여 용궁에 들어가 은밀한 가르침을 전수하고, 용왕이 보시한 황금 1천 냥(혹은 1천 근)을 받았다. 그리고 땅속을 걸어 자기 집 우물 밑에서 솟아 나왔다. 후에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절을 만들고, 용왕이 보시한 황금으로 탑과 불상을 장엄하였는데 그 광채가 빼어나고 특이하여 금광사(金光寺)라 이름하였다. 금광사는 밀교 종파인 신인종(神印宗)의 중심 도량으로, 신라에 밀교를 전파한 최초의 도량이다.
채색 비단으로 절을 짓고, 풀로 오방신상을 엮다
668년,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군대를 거느리고 신라와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리고 남은 군사는 옛 백제 땅에 머물게 하면서 신라를 습격하여 멸망시키려 하였다. 신라 사람들이 이 계획을 알고 군사를 일으켜 그것을 막았다. 당나라 고종이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장군 설인귀(薛仁貴)에게 명령해 병사 50만 명으로 신라를 토벌하게 하였다.
당시 문무왕은 주변에 많은 승려를 두어 정신적인 통일과 화합에 힘썼다. 임금은 당나라 군대가 신라를 무력으로 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신하들을 모아 놓고 방어책을 물었다.
이에 최고 관등인 각간(角干) 김천존(金天尊, ?~679년)이 아뢰었다.
“최근에 명랑 스님이 용궁에 들어가 문두루(文豆婁, Mudrā, 眞言) 비법을 전수하고 왔다고 하니, 그 스님을 불러 물어보십시오.”
명랑 스님을 궁궐로 불러와 물으니, 스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낭산(狼山) 남쪽에 신성한 신유림(神遊林)이 있으니, 그곳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고 도량을 열면 좋겠습니다.”
낭산은 제석천이 머무는 도리천을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성스러운 장소였고, 신유림은 천신이 내려와 노닐었다고 신성시되던 곳이다.
그때 정주(貞州, 경기도 개풍군 일대)를 지키던 병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지금 수많은 당나라 군사들이 우리 국경에 이르러 바닷가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절을 완성할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된 것이다.
“일이 이미 다급해졌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곱게 물들인 비단을 가지고 임시로 절을 만드십시오.”
이에 낭산의 신유림에 곱게 물들인 비단으로 절을 짓고, 풀을 엮어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맡은 신상[五方神像]을 만들어 모셨다. 그리고 삼밀유가(三密瑜伽)를 수행하고 불교의 비밀법에 밝은 유가명승(瑜珈明僧) 12명과 함께 문두루 비법을 시행했다. 그러자 당나라와 신라의 군사가 싸우기 전에 갑자기 바람과 파도가 거세게 일어 당나라 군대의 배가 뒤집혀 모두 침몰하였다. 그 후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라고 하였다.
불법으로 적선을 침몰시키다
671년에 당나라는 다시 조헌(趙憲)을 장수로 삼아 5만 명의 군사를 보내 정벌하도록 했고, 문무왕은 명랑 스님에게 문두루 비법으로 적군을 물리쳐 달라고 요청하였다. 스님은 이번에도 신유림에 밀단법(密壇法)을 만들었다. 밀교 문헌인 『관정경(灌頂經)』에 의거하여, 5방신인 단차아가·마하저두·이도열라·마하가니·조달라주와 그 권속 35만의 이름을 둥근 나무 위에 적어 놓고, 밀교 의례를 시행하면서 다라니[神呪]를 독송하였다. 그러자 해로로 침범해 온 당나라 군사들이 망망대해 속으로 침몰되었다.
파도를 일으켜 적선을 침몰시키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스님이 초기밀교 경전을 활용한 문두루 비법으로 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신비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백성들을 지켜내니, 신라인들은 밀교 의례가 효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로써 그 명성이 드러나 널리 알려졌고 밀교 종파인 신인종(神印宗)의 초조(初祖)로 추대되었다. 이후 명랑 스님의 제자 안혜(安惠)·낭융(朗融) 스님과 그들의 후예인 광학(廣學)·대연(大緣) 스님이 신인종을 이끌었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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