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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道成)

활동왕조 통일신라
활동시기 [미상]
포산에 은거하다
도성(道成)은 통일신라 시대 포산(包山, 대구 달성군 비슬산)의 깊은 산중에 은거하여 자연을 벗 삼아 노닐며 수도한 스님이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행적을 알려주는 자료는 전하지 않지만, 세속을 떠나 사람의 발자취가 드문 곳에서 도반인 관기(觀機) 스님과 함께 불도를 구하며 지냈다고 한다. 두 스님은 안개 가득한 골짜기에서 나뭇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고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풀뿌리로 주린 배를 채우며 간소한 삶을 살았다.
나무와 풀들이 응하다
도성 스님은 포산의 북쪽 바위굴에 거처하였고, 관기 스님은 남쪽 고개에 암자를 짓고 머물렀다. 두 스님은 서로 10리(4㎞) 가량 떨어진 거리에 살면서 달 밝은 밤이면 구름과 나무들 사이로 날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높은 산에 올라 마음을 나누며 왕래하였다. 도성 스님이 관기 스님을 부르면 산속의 나무와 풀들이 모두 관기 스님 쪽을 향했으므로 관기 스님은 그것을 보고 도성 스님에게 갔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기 스님이 도성 스님을 보고 싶어 하면 나무와 풀들이 도성 스님이 있는 북쪽을 향해 구부러졌으므로 도성 스님은 그것을 보고 관기 스님을 찾아가곤 하였다. 그렇게 두 스님은 산속의 나무와 풀들의 형상을 통해 상대방의 부름을 알아차리고 왕래했다.
구름과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왕래하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몸을 솟구쳐 날아가다
도성 스님은 자신이 머물던 바위굴 뒤에 있는 웅장한 바위에서 참선하며 불도를 닦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갑자기 뒷산 바위 사이에서 솟구쳐 나와 온몸을 공중으로 날리며 떠났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떤 이는 수창군(壽昌郡, 대구 수성구와 달성군)에 이르러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관기 스님도 곧 도성 스님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려 입적하였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향나무가 촛불처럼 빛나다
도성 스님이 살아생전 거주했던 비슬산 정상인 천왕봉 아래에 도성암(道成庵)이 있는데, 그곳은 아득한 옛날 가섭 부처님이 이곳에 이르러 “장차 이 자리에서 1천 명의 성인이 나오리라.”라고 예언하여 ‘천인득도지’로 이름난 참선도량이다. 982년에는 성범(成梵) 스님이 이 절에 와서 살면서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섬기고,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의 수행 장소로 삼고 50여 년 동안 도를 닦았는데 여러 차례 상서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당시 거사 20여 명이 해마다 결사(結社)에 참여하였고, 신도들과 함께 포산에 들어가 불사(佛事)에 사용할 향나무를 채취하였다. 채취한 향나무를 도성암으로 가지고 와서 쪼개고 씻어서 갈대로 엮어 만든 발 위에 펼쳐 두면 그 향나무가 밤에는 빛을 발하여 촛불처럼 밝은 빛을 내었다. 고을 사람들은 이러한 상서로운 현상이 도성 스님과 관기 스님의 보살핌이며, 포산에 상주하고 있는 산신의 신령스러운 빛이라고 믿었다.
1천 명이 득도하리라
도성 스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참선도량 도성암에서는 지금도 1천 명의 성인을 기다리며 많은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일연 스님은 도성(道成)·관기(觀機)·반사(㮽師)·첩사(𣛻師)·자양(子陽)·성범(成梵)·금물녀(今勿女)·백우(白牛)·백암사(栢岩寺) 도의(道義) 스님이 포산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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