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왕조 | 통일신라 |
|---|---|
| 활동시기 | [7세기] |
성현(聖賢)의 스승
낭지(朗智)는 6~7세기에 신라에서 활동한 스님이다.
527년부터 여러 해 동안 삽량주 아곡현의 영축산(靈鷲山, 경상남도 양산과 울산에 걸쳐 있는 산)에 암자를 짓고 『법화경』을 외우며 지냈다. 스님은 수십 년 동안 마을에 내려가 탁발해서 공양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이름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기에 고을 사람들은 그 스님이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원효(元曉) 대사가 영축산 반고사(磻古寺)에 머물면서 낭지 스님에게 배웠고,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초장관문(初章觀文)』과 『안신사심론(安身事心論)』을 저술하여 불법을 널리 전파하였다. 지통(智通) 스님은 낭지 스님에게 『법화경』을 배우고 보현보살의 수행 방법을 배웠다. 지통 스님은 의상 스님의 으뜸가는 제자로서, 『추동기』를 저술했는데 낭지 스님께도 배운 것이다. 원효 대사와 지통 스님은 모두 덕과 지혜가 뛰어난 성인(聖人)인데, 낭지 스님을 공경하여 스승으로 섬겼으니 낭지 스님의 도(道)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구름을 타고 노닐다
낭지 스님은 영축산 암자에 주석하며, 산 정상에 올라 주문을 외워 구름을 타고 중국 남쪽 청량산에 가서 그곳 대중과 함께 설법을 듣고 돌아오곤 하였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낭지 스님을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청량산 사찰의 어떤 이가 제안하였다.
“이 절에 상주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 온 스님들은 각기 자기가 사는 곳의 이름난 꽃과 진귀한 식물을 가져와서 도량에 보시하시오.”
낭지 스님은 그 이튿날 영축산의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다가 바쳤다. 청량산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이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이 나무는 범어로 달제가(怛提伽)라 하고 여기서는 ‘혁(赫)’이라 하는데, 오직 인도와 신라의 두 영축산에만 있습니다. 두 산은 모두 십지(十地)의 최고 경지인 법운지(法雲地)의 보살이 머무는 곳이니, 이 나무를 가지고 온 스님은 반드시 성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마침내 그 나뭇가지를 가지고 온 스님을 찾아서 그의 행색을 살피고, 신라의 영축산에 살고 있는 낭지 스님임을 알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낭지 스님의 이름이 나라 안팎으로 드러났고, 낭지 스님이 사는 암자를 혁목암(赫木庵)이라고 불렀다.
주문으로 구름을 부르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까마귀가 맺어 준 인연
661년 무렵, 이량공(伊亮公)의 집에서 노비로 살던 지통(智通)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지통이 7세가 된 어느 날 까마귀가 나타나 곁에 와서 말하기를, 영축산에 가서 낭지 스님에게 의탁하여 제자가 되라고 하였다. 지통은 까마귀의 말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고 길을 나섰다. 영축산으로 낭지 스님을 찾아가다가 골짜기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나는 보현보살인데 너에게 계(戒)를 주려고 왔단다.”
그렇게 계를 주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통 스님은 계를 받은 그때부터 마음에 막힘이 없고 진실한 지혜가 열려 문득 두루 깨닫게 되었다.
다시 길을 가다가 어떤 스님을 만나서 낭지 스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물었다. 스님이 어째서 낭지 스님을 묻느냐고 하니, 신이한 까마귀의 일을 자세히 말하고 낭지 스님의 제자가 되려고 찾아왔다고 하였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내가 낭지란다. 나도 그 까마귀를 만났단다. 까마귀가 내게 와서, 성스러운 아이가 의탁하려고 올 것이니, 마중을 나가 맞이하라고 하더구나.”
스님은 그의 손을 잡고 감탄하며 말했다.
“신령스런 까마귀가 너를 깨우쳐 나에게 의탁하게 하였고, 또 나에게 알려 너를 맞이하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상서로운 일이더냐? 아마 산신령님이 도우신 것 같구나!”
스승이 제자에게 절을 올리다
지통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기뻐서 낭지 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이윽고 낭지 스님이 지통 스님에게 계를 주려고 하자, 지통 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마을 입구의 나무 아래에서 이미 보현보살님께 정계(正戒)를 받았습니다.”
“훌륭하구나! 나는 아침저녁으로 삼가고 지금까지 보현보살 뵙기를 염원했으나 아직 만나 뵙지 못했는데 네가 먼저 뵙고 계를 받았으니 내가 오히려 너에게 절을 해야겠구나.”
스님이 감탄하며 지통 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지통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여기에 머문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법흥왕 정미년(527)에 처음 여기 와서 살았는데 지금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통 스님이 이 산에 온 것은 문무왕이 즉위한 해(661년)이니, 이로 미루어 그 연수를 계산하면 낭지 스님은 혁목암에서 135년이나 머물렀던 것이다. 혁목암은 울산 영축산 북쪽 산등성이에 옛 절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마저 찾을 길이 없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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