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혜숙(惠宿)

활동왕조 신라
활동시기 [6~7세기]
화랑 낭도였다가 은거하다
혜숙(惠宿) 법사는 신라 진평왕 시대에 화랑 집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화랑 집단은 각기 화랑 한 명과 승려 약간 명, 그리고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郎徒)로 구성되었다. 혜숙 법사는 화랑 호세랑(好世郞)의 낭도였는데 자취를 감추고 적선촌(赤善村)에 은거하였다. 적석촌은 고려시대 경주 안강읍에 있던 적곡촌(赤谷村)이라 추정된다. 현재 안강읍 하곡리를 예전에 적화오리(赤火五里)라 칭하였다고 한다. 600년(진평왕 22)에 승려 안함(安含)과 함께 배를 타고 수나라로 향했다. 수나라에 가서 불교를 배우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수나라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수나라로 가는 도중 섭도(涉島)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돌아왔다.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주다
혜숙 법사가 은거한 지 20여 년이 되었을 때였다. 당시 국선(國仙, 화랑)인 구참공(瞿旵公)이 사냥하고 있길래, 법사가 길가에 나와 고삐를 잡고 청하기를, “소승도 따라가고 싶은데 괜찮습니까?”라고 하니, 공이 허락하였다. 이에 옷을 벗고 이리저리 달리며 사냥에 참여하니, 공이 기뻐하였다. 공이 사냥을 쉬고 앉아서 고기를 구워 먹으니, 법사도 같이 앉아서 함께 뜯어먹으며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윽고 법사가 앞에 나아가 말했다. “지금 여기에 맛있는 고기가 있어서 드리려 하는데 어떠십니까?” 공이 좋다고 하였다. 법사가 칼로 자기의 허벅지를 잘라 쟁반에 담아서 바치니, 옷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이 놀라 실색하며, 왜 이러냐고 물었다. 법사가 말했다. “처음에 소승은 공께서 인자한 분이라 능히 자기를 헤아려 만물에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께서 좋아하는 바를 살펴보니, 오직 살육을 즐겨 자기 배를 채울 뿐입니다. 어찌 인자한 군자의 행동이겠습니까. 저는 함께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공은 크게 부끄러워하다가, ‘법사도 같이 고기를 먹지 않았던가?’ 생각하며 의아했다. 그래서 살펴보니 법사의 쟁반에는 고기가 그대로 있었다. 구참공의 살생을 깨우치는 방편으로 환술을 보였던 것이다.
분신술을 펼쳐 중사의 발걸음을 돌리다
구참공은 매우 기이하게 여겨 조정에 가서 진평왕에게 아뢰었다. 진평왕이 듣고서 대단한 고승이라 여겨 중사(中使, 내시)를 보내어 맞아들이게 하였다. 중사가 법사 거처에 가서 보니, 혜숙 법사가 부인의 침상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중사는 계율을 지키지 않는 더러운 행위라고 여겨 그대로 돌아섰다. 그렇게 7~8리를 가는 중에 혜숙 법사를 길에서 만났다. 깜짝 놀란 중사는 법사에게 어디서 오는지를 물었다. 법사는 신도 집의 7일재(齋)에 갔다가 끝내고 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중사가 그 말을 왕에게 아뢰고 사람을 보내 신도 집을 조사하니 그 일 또한 사실이었다. 임금의 부름에 응하기 번거로워 분신술 이적을 보인 것이다.
정토신앙의 선구가 되다
혜숙 법사는 경북 영주에 미타사(彌陁寺)를 창건하였다. 미타사가 현재 영전사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다. ‘미타’는 ‘아미타불’ 즉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하시는 부처님을 가리킨다. 법사는 정토신앙의 선구자가 되어, 신라 10성(聖)의 한 분으로 꼽힌다. 신라 10성은 아도(阿道)·염촉(厭觸, 이차돈)·안함(安含)·의상(義湘)·표훈(表訓)·원효(元曉)·혜공(惠空)·자장(慈藏)·사파(蛇巴) 스님을 말한다. 경주 흥륜사 법당 동쪽에 아도·이차돈·혜숙·안함·의상 스님이, 서쪽 벽에는 표훈·원효·혜공·자장·사파 스님이 진흙으로 빚어 만든 형상, 즉 이소(泥塑)로 봉안되었다고 한다.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 강주(康州, 진주)의 선사(善士) 수십 명이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려는 뜻으로, 미타사에서 염불만일계(念佛萬日契) 즉 1만 일 동안의 염불을 기약하고 계(契)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아간(阿干, 아찬) 귀진(貴珍)이 있었고, 귀진에게 욱면(郁面)이라는 이름의 여종이 있었다. 욱면은 주인을 따라 미타사에 가서 염불했으나 법당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하였다. 그런 욱면을 주인이 싫어하여 일감을 많이 주는 등 방해를 하였는데, 욱면은 이를 무릅쓰고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염불하여 서방으로 날아가 극락왕생하였다.
짚신 한 짝 남기고 흔적 없이 열반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혜숙 법사가 갑자기 죽자, 마을 사람들이 이현(耳峴, 또는 형현硎峴) 동쪽에 장사 지냈다. 그날 마을 사람 중에 이현 서쪽에서 마을로 오다가 길에서 혜숙 법사를 만나, 어디 가시냐고 물었다. 법사는, “이 땅에 오래 머물렀으니 다른 곳을 유람하고자 갑니다.”라고 하였다.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반 리쯤 가다가 그 사람이 돌아보니, 혜숙 법사가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이 보였다.
구름을 타고 가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그 사람이 고개 동쪽에 이르니, 장사 지내는 마을 사람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누구의 장례냐고 묻고서, 깜짝 놀란 그는 도중에 법사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두 의아하여 다시 무덤을 열어 관을 들여다보니, 오직 짚신 한 짝만 있을 뿐이었다. 안강읍 북쪽에 있던 ‘혜숙사(惠宿寺)’가 혜숙 법사가 주석하던 곳이고, 또한 부도(浮圖)가 있었다고 한다. 안강읍 서쪽에 있는 강동면의 북쪽 단구리에 있는 절터가 혜숙사 터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 집필자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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