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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智明)

활동왕조신라
활동시기[6~7세기]
지혜와 덕이 뛰어난 스님
지명(智明) 스님은 신라 진평왕 때에 활동하였다. 스님은 신통과 지혜가 있었고 깨달음이 뛰어났으며, 행동이 법도에 맞았다. 안으로 수행을 닦아 쌓았고 밖으로 항상 남의 덕을 찬양하며 자신도 그렇게 되고자 하였다. 좋은 것은 희사하여 남에게 주고, 온화하면서도 위엄이 있어 모범이 되었다.
진나라에 가서 공부하다
당시는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가 해동에 전해진 초창기라 아직 크게 떨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뛰어난 분들이 간간이 나와 활동하였으니, 스스로 깨달아 능력을 발휘하거나 멀리 서쪽으로 중국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오는 스님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지명 스님은 585년(진평왕 7) 7월에 진(陳)나라로 가서 불법을 구하였다. 도가 있고 명성이 있는 분이라면 두루 다 찾아다니며 물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불법의 진수를 얻으니, 불법을 전파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귀국하여 포항 보경사를 창건하다
602년(진평왕 24) 9월에 수나라에 온 입조사(入朝使, 중국에 조회하러 가는 사신) 상군(上軍, 고관)을 따라 귀국하였다. 진평왕은 스님의 풍격을 우러르고, 그 계행(戒行)을 존경하여 대덕(大德, 지혜와 덕망이 높은 승려)으로 삼았다. 스님의 기상이 태산처럼 높고 도량은 바다처럼 넓으며, 지혜의 달을 비추고 덕행의 바람을 떨치니, 승려와 속인 모두의 규범이 되었다. 그리하여 대대덕(大大德)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이후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포항 보경사 천왕문(출처 : 국가유산청)
포항 내연산 보경사(寶鏡寺)를 지명 스님이 603년에 창건하였다. 앞서 진나라 유학 중에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명당자리에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나라가 굳건해지고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진평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기뻐하며 스님과 함께 동해안을 행차하다가 커다란 못을 발견하고는, 이곳에 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사찰을 창건하였던 것이다.
백제의 지명 법사
『삼국유사』 무왕 조에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를 도와 황금과 편지를 하룻밤 사이에 신라 진평왕에게 보냈다는 별개의 지명(知命) 법사가 나온다. 두 스님의 활동 시기가 유사한데 지명 법사는 익산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에 주석하였다. 무왕이 즉위한 후 용화산 아래 못에서 미륵불 세 분이 출현하자 무왕이 여기에 사찰을 지으려고 지명 법사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지명 법사가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못을 메웠고,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도 일꾼을 보내 사찰 창건을 도왔으니, 이렇게 미륵사가 세워졌다. 지명 법사는 599년(백제 법왕 원년)에 예산 덕숭산 수덕사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 집필자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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