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왕조 | 신라 |
|---|---|
| 활동시기 | 6~7세기 |
| 생년 | 579년 |
| 몰년 | 640년 |
타고난 깨달음으로 교화를 펼치다
안함(安含, 579~640년) 스님은 신라 진골 출신으로 속성은 김씨, 시부(詩賦) 이찬(伊飡, 제2관등)의 손자이다. 나면서부터 도리를 깨달아 성품이 맑았으며, 의연하고 깊은 도량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일찍부터 내키는 대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풍속을 살펴보고 널리 교화를 펼쳤다.
국가장학생으로 수나라 유학
600년(진평왕 22)에 고승 혜숙(惠宿)과 의기투합하여 함께 수나라에 가서 공부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같이 배를 타고 수나라로 가는 도중 섭도(涉島) 아래를 지나다가 그만 풍랑을 만나,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듬해 601년에 진평왕이, 법기(法器)를 이룰 만한 자를 뽑아 수나라에 파견하여 학문을 닦게 하라고 명했다. 이때 안함 법사가 적합하다고 뽑혀서, 사신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수나라로 갔다.
육신통을 펼치고, 경론에 통하다
수나라 문제(文帝)가 안함 법사의 재능을 알아보고 매우 기뻐하며 칙명으로 큰 사찰에 머물게 하였다. 법사는 그곳에 머문 지 몇 개월 안 되어 현묘한 뜻을 환히 깨달았다. 이에 섬서성(陝西省) 동부 화산(華山)에서 선장(仙掌)까지 10개 역(驛)이나 되는 길을 한낮에 갔다 돌아와서 저녁 북소리를 들었고, 섬서성 남부 진령(秦嶺)에서 제궁(帝宮)까지 천리나 되는 땅을 하룻밤 사이에 다녀와 새벽 종소리를 듣기도 했다.
『법화경』에 뛰어난 수나라 지의(智顗, 538~597년) 천태대사가 강설하고 그 제자가 기록한 『마하지관』에 나오는 수행법이나, 지의가 『묘법연화경』을 해석한 『법화현의』를 5년 동안 두루 공부했다.
나랏일을 예언하다
605년(진평왕 27)에 중앙아시아 우전(于闐, 호탄Khotan) 왕국의 승려 비마진제(毗摩眞諦)와 승려 농가타(農加陀) 등과 함께 신라로 돌아왔다. 서역의 승려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신라로 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신라로 돌아온 뒤 예언서를 지었는데,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하며 전하지 않는다. 안함 법사가 예언한 일 중에 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여주(女主, 선덕왕)를 도리천에 장사 지내리라
② 천리에 나아가 싸우던 군사가 패하리라
③ 사천왕사(四天王寺)가 이루어지리라
④ 왕자(무열왕의 아들 김인문)가 고국에 돌아올 시기
⑤ 대군(大君, 국왕)이 성대하게 밝아지는(삼국통일) 시기
도리천에 장사 지내는 것은 선덕왕이 예언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을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는 말에 신하들이 어리둥절하며 어디를 말씀하시는 거냐고 물으니, 낭산(신유림) 남쪽이라고 선덕왕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곳에 장례를 지냈는데, 이후 문무대왕이 사천왕사를 선덕왕릉 아래 세웠다. 사왕천이 욕계 제1천이고 도리천이 욕계 제2천이므로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가운데 숲이 선덕왕릉이 있는 낭산, 그 앞쪽 평지가 사천왕사 자리(출처 : 국가유산청)
파도를 타고 서쪽으로 사라지다
640년(선덕왕 9) 9월 23일에 만선도량(萬善道場)에서 입적하였다. 당시 신라 사신이 수나라에서 돌아오다가 바다 위에서 법사를 보았는데, 법사는 푸른 물결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 기쁘게 서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고 한다.
저서로 예언서 외에 황룡사 9층탑의 연기(緣起) 설화를 수록한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를 찬술하여, 『삼국유사』 등에 인용되었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한림(翰林) 설모(薛某)가 왕명을 받들어 법사의 비문을 지었는데 역시 현전하지 않는다.
안홍 법사와 동일인?
안함 법사를 『삼국유사』 탑상편 황룡사구층탑조에 기록된 안홍(安弘) 법사와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안홍 법사는 서역 승려 비마라(毗摩羅) 등 2인과 함께 귀국하여 황룡사에 머물면서 『전단향화성광묘녀경(栴檀香火星光妙女經)』을 번역하였다고 한다.
· 집필자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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