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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본(密本)

활동왕조신라
활동시기[7세기]
육환장이 날아가 여우와 요승을 처벌하다
밀본(密本)은 신라 27대 선덕왕(재위 632~647년) 때 활동한 스님이다. 636년 선덕왕이 병에 걸렸는데 어떠한 약으로도 낫지 않아, 황룡사에서 백고좌(百高座) 법회를 열어서 승려들을 모아 『인왕경』을 강론하게 하고, 100명에게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백고좌 법회’란 나라의 평안을 위해 백 개의 사자좌를 마련하여 백 분의 법사를 모시고 백 일 동안 매일 한 분씩 설법하게 하는 법회를 말한다. 『인왕경』은 국왕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공덕으로 국토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하여 왕이 직접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법회를 열도록 요구하는 내용이므로, 백고좌 법회의 근거가 된다. 선덕왕은 흥륜사 승려 법척(法惕)에게 병시중을 들게 했으나 오래도록 효험이 없었다. 그래서 좌우 신하들이 당시 명성이 높던 밀본 법사를 추천하였고, 왕이 조서를 내려 궁궐 안으로 맞아들였다. 밀본 법사는 신장(宸仗, 임금의 처소) 밖에서 『약사경』을 읽었다. 그러자 밀본 법사의 육환장(六環杖)이 침전 안으로 날아 들어가서 늙은 여우와 법척을 찔러 뜰 아래로 거꾸로 내던졌다. 이후 왕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흥륜사지(출처 : 국가유산청)
여우는 토착신앙과 긴밀한 관련이 있으므로 여우와 같이 징치되었다는 점에서 법척은 무당이나 주술사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이해된다. 법척과 달리 밀본은 『약사경』이라는 불경을 내세웠다. 법척에 대한 징치는 토착신앙과 뒤섞인 불교를 배격하는 의미를 갖는다.
귀신에게 시달리던 김양도를 치유하다
김유신을 도와 백제군을 격파한 김양도(金良圖)가 어린아이였을 때, 갑자기 입이 붙어 말을 못 하고 몸이 굳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큰 귀신이 작은 귀신들을 이끌고 와서 집안의 음식들을 다 맛보는 것을 보았는데 물러가라고 말하고 싶어도 입이 붙어, 말할 수 없었다. 무당이 와서 굿을 하면 귀신들이 도망가기는커녕 모여서 무당을 희롱할 뿐이었다. 부친이 법류사(法流寺)의 승려를 초청하여 불경을 읽게 하자, 귀신들이 철퇴로 승려의 머리를 치니, 그 승려가 쓰러져 피를 토하고 죽었다. 법류사의 승려 역시 법척과 마찬가지로 무속신앙과 혼재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부친이 밀본 법사의 명성을 듣고서 사람을 보내 밀본 법사를 청하였다. 심부름꾼이 돌아와서, 밀본 법사가 곧 올 거라고 하니, 귀신들이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였다. 작은 귀신이 말하기를, “법사가 오면 이롭지 못할 테니 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큰 귀신이 거만하게 괜찮다고 대꾸하였다. 잠시 후 사방에서 쇠갑옷을 입고 긴 창을 지닌 신들이 와서 귀신들을 잡아 묶어 갔다. 이후 수많은 천신(天神)이 김양도의 방을 둘러싸고 대기하였고, 잠시 후 밀본 법사가 와서 경전을 펴자마자, 김양도의 병이 완치되었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김양도는 자신이 본 상황들을 설명하였고, 그제야 주위 사람들이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귀신 들린 김양도를 치유하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김양도는 이 일을 겪고서 불교를 독실하게 신봉하여 평생 태만함이 없었고, 흥륜사 오당(吳堂)에 주존 미륵존상과 좌우 보살을 소상으로 만들어 안치하고, 아울러 오당을 금색 벽화로 채웠다. 김양도 사건은 불교가 신라 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해 감을 알려주며, 밀본 스님의 치병주술은 무격신앙과 혼재된 불교를 배격하고 불경에 의거한 불교신앙을 정립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장산 금곡사에 주석
밀본 법사는 일찍이 금곡사(金谷寺)에 머물렀다. 금곡사는 밀본 이전에 원광(圓光) 법사가 수행하던 사찰이며, 경주시 안강읍 비장산(금곡산)에 있었다.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가 이후 새롭게 지어졌다. 절터에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금곡사지 원광법사부도탑’이 있다.
· 집필자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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