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왕조 | 신라 |
|---|---|
| 활동시기 | [6세기] |
신라인 최초로 양나라에 유학 가다
각덕(覺德)은 신라 진흥왕 시대에 활동한 스님이다. 스님은 총명하고 박식하여 일반인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신라는 당시에 이미 불교를 받아들인 상황인지라, 사람들이 각덕 스님의 총명함에 감탄하여 다투어 귀의하고 따랐다. 그러나 스님은 그런 인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뜻을 세웠다.
“높은 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골짜기에서 나와야 하듯
도를 배우려면 스승을 구하기에 힘써야 한다.
편안하게 살면서 실행하는 것에 게으르다면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출가한 본래 뜻이 아니다.”
그리하여 스님은 배를 타고 양(梁)나라로 들어가 불법을 공부하는 데 앞장섰다. 어느 연도에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에 공부하러 간 것이었다.
양나라에서 명망을 떨치다
각덕 스님은 양나라에서 고명한 스승들을 두루 찾아가 섬기면서 그 가르침을 자세히 받았다. 그리하여 마치 눈동자 덮은 막을 벗긴 것 같고, 귓속 귀지를 파내버린 듯 막힘이 없이 통달하였다. 불경을 배움에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었으며, 거칠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았으니, 덕망은 높고 행실은 뛰어나 명망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렇게 두루 불법을 공부하고서, ‘보배를 캐는 것이 단지 나 혼자만 쓰고자 한 것이 아니니, 마땅히 고국으로 돌아가 가난한 사람들을 널리 구제해야겠다.’ 생각하고는 549년(진흥왕 10)에 양나라 사신과 함께 부처님 사리를 받들고 신라 경주로 돌아왔다.
신라인 최초로 사리를 받들어 귀국하다
양나라 사신과 각덕 스님이 부처님 사리를 받들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진흥왕은 관리들에게 예를 갖추어 흥륜사 앞길에 나가 맞이하게 하였다. 스님이 부처님 사리를 받들어 옴으로써 신라에 부처님 사리가 최초로 머물게 되었다. 중국 삼국시대에 강거국(康居國,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사람으로서 오(吳)나라에 불교를 전파하고자 남경으로 들어온 강승회(康僧會)는 부처님 사리를 얻기 위해 기원한 지 21일 만에 사리를 얻어서 오나라 왕 손권(孫權)을 불법에 귀의하게 했다. 이에 비하여 각덕 스님은 공덕이 출중하였고 마침 임금이 불교를 신봉하던 때인지라, 양나라의 사신과 함께 사리를 받들어 본국에 돌아옴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그리하여 불법의 물결로 신라를 두루 적셔 게으른 사람들을 바로 세워 불도에 귀의하는 뜻을 품게 하였으니, 그 공적과 이익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흥륜사와 영묘사 앞길
진흥왕이 각덕 스님을 맞이하라고 했던 장소가 흥륜사 앞길(삼국유사, 해동고승전)이 아니라 영묘사 앞길(삼국사기)로 표기되기도 한다. 장소가 어디든 간에 어쨌거나 흥륜사와 영묘사 앞길의 존재를 통하여 중고기에 월성(왕성)과 대형 사찰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주 사정동에 있는 흥륜사에서 1976년 ‘영묘사’라고 새겨진 명문(銘文) 기와가 발견되면서 이곳이 영묘사 터로 추정되기도 한다.
영묘사 터가 표시된 경주 시내(출처 : 『우리 조상들이 다녀간 신라 왕경 경주』)
· 집필자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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